1 / 34

러시아로 귀화해 ‘쇼트트랙의 황제’로 부활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로 선정됐다. 판정 논란을 불러일으킨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는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으로 뽑혔다.

미국 방송 NBC는 24일(한국시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베스트 14’을 선정하면서 1위로 안현수를 꼽았다. 안현수는 쇼트트랙 4종목에 출전, 남자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에 올랐다. 쇼트트랙 첫 종목인 1500m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개최국 러시아에 금 3개, 동 1개의 메달을 선사했다.


○3관왕 안현수, 최고 선수 1위

안현수는 뛰어난 성적과 함께 특별한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NBC는 안현수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선 한국 국적으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고 소개했다. 이번 소치에서와 같은 메달 수다. 안현수는 무릎 부상을 입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협 화음까지 겹쳐 한국을 떠났다.

러시아에서 맞춤형 훈련을 받으며 재활에 성공한 안현수는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금 13·은 11·동 9)가 노르웨이(11·5·10)를 제치고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이후 20년 만에 종합 1위에 오르는 데 수훈을 세웠다. 통산 8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 쇼트트랙 종목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을 경신했다. NBC는 “한국 팬들은 안현수의 선전과 맞물려 자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을 아쉬워했다”고 소개했다.

2위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를 독식한 이레인 뷔스트(네덜란드)가 차지했다. 동성애 선수로 이번 대회 첫 메달을 따내 화제가 되기도 한 뷔스트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와 팀추월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1000m와 1500m,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뷔스트는 한 올림픽에서 메달 다섯 개를 딴 역대 여덟 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10㎞와 혼성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오른 노르웨이의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이 3위에 올랐다. 만 40세인 그는 이번 대회 금메달 2개를 추가해 동계올림픽 개인 통산 메달 수를 13개로 늘렸다. 13개는 동계스포츠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이 가운데 금메달만 8개에 달한다. 비에른달렌은 마리트 비에르옌(노르웨이)과 함께 유로스포츠 선정 남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연아·소트니코바 기억에 남는 순간

NBC는 이와 별도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선정하면서 ‘피겨 여왕’ 김연아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가 경쟁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을 가장 먼저 꼽았다. 지난 대회 우승자인 김연아는 자신의 현역 마지막 무대인 소치 올림픽에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톡톡히 누린 소트니코바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내줬다.

러시아 팬들은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에 열광했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피겨스케이팅의 채점 방식과 심판 구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작 이런 논란에 당사자인 소트니코바는 동요하지 않았고, 김연아는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이번 피겨 여자 싱글 판정 논란과 관련해 세계빙상연맹(ISU)을 상대로 글로벌 청원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심판의 판정과 점수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청원을 올렸다. 청원 개설 나흘째인 24일 인터넷 서명자가 201만명을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김연아를 위한 헌시를 온라인판에 실었다. 가나계 미국 시인 크와미 도스(52)가 쓴 이 시의 제목은 ‘폐회식, 김연아, 격에 맞지 않는 은메달’이다.

도스는 이 시에서 “금메달을 놓쳤을 때, 모두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속삭였을 때, 나는 그를 믿었다. 시기와 분노, 경외와 공포로 비롯된 모든 무게로부터 해방된 그의 진심을 믿었다”고 썼다. 시의 마지막 행에서는 “그는 스케이트에서 내려와 땅을 밟고, 평범한 모두처럼 무대를 떠났다”며 김연아의 은퇴를 기념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