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왼손 투수 류현진(26·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올해 대망의 월드시리즈를 밟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다저스가 1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7전 4승제) 6차전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0-9로 대패, 2승 4패로 탈락하면서 류현진의 2013시즌도 막을 내렸다.

이날 믿었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가 세인트루이스의 집중타에 무너지면서 20일 명운을 건 류현진의 7차전 선발 등판은 없던 일이 됐다.

몸값 2억 달러가 넘는 호화멤버를 거느리고 1988년 이후 25년 만에 월드시리즈 제패를 향해 나선 다저스는 허무한 결과를 안고 걸음을 멈췄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올해 월드시리즈 진출 문턱에서 아쉽게 발을 돌렸지만 류현진은 값진 성과를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저스가 NLCS에서 강팀 세인트루이스에 맞서 그나마 6차전까지라도 벌인 발판을 놓은 것은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15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NLCS 3차전에서 7이닝 동안 단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는 일생일대의 호투를 펼쳐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잭 그레인키, 커쇼 등 투수 최고 영예인 사이영상을 받은 원 투 펀치를 마운드에 올리고도 NLCS 1∼2차전을 모두 패해 사실상 벼랑 끝에 몰린 다저스는 이 승리로 기사회생했다.

이후 홈에서 벌어진 3∼5차전을 2승 1패로 마치고 시리즈 전적 2승 3패를 올려 다저스는 세인트루이스로 다시 기수를 돌릴 수 있었다.

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3이닝 동안 안타 6개를 맞고 기록되지 않은 실책 2개를 저질러 4실점한 뒤 조기 강판한 상처를 깨끗이 털어낸 류현진은 역대 한국인 빅리거 첫 포스트시즌 승리와 첫 포스트시즌 선발승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이 유력한 커쇼가 6차전 승리를 따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면 류현진이 7차전에서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을 찬스를 잡을 뻔했으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커쇼의 부진 탓에 류현진은 내년을 기약하고 시즌을 접었다.

2월 중순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캐멀 백 랜치 스타디움에서 출발해 이날 부시스타디움에서 시즌을 마칠 때까지 빅리그 신인 류현진은 8개월간 다양한 일을 겪었다.

흡연과 달리기 꼴찌에서 기인한 체력 논란으로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류현진은 특유의 친화력과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놀라운 흡입력을 바탕으로 생경한 빅리그 문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그레인키, 채드 빌링슬리, 조시 베켓의 연쇄 부상으로 커쇼에 이어 팀의 두 번째 선발로 정규리그를 맞이한 류현진은 전반기에만 7승 3패, 평균자책점 3.09를 올리고 팀의 선발 로테이션 한 축을 확실히 꿰찼다.

4월 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제물로 6⅓이닝 동안 2실점 투구로 두 번째 등판 만에 빅리그 통산 첫 승리를 올렸고 5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2피안타로 버텨 첫 완봉승(3-0)을 수확했다.

투구 중 타구에 발가락을 맞고 허리 통증 탓에 선발 로테이션을 두 차례 거르기도 했으나 류현진은 후반기에도 7승을 보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으로 정규리그를 끝냈다.

그는 2002년 일본인 투수 이시이 가즈히사(14승) 이후 다저스 신인 최다승을 올리며 구단 역사를 빛낸 '아시안 파워'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등판일 사이 불펜 투구를 하지 않는 습관까지 여러 논란을 실력으로 잠재운 류현진은 커쇼, 그레인키와 더불어 다저스 선발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처음으로 뛴 162경기 대장정에서 류현진은 시속 140㎞대 후반의 빠른 볼과 날카로운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4개 구종을 앞세워 꾸준히 승수를 쌓고 22차례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내 투구)를 벌여 기복 없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긴 시즌을 뛸 때 필요한 체력 안배 요령과 직구 제구 보완에 대한 숙제를 안은 류현진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시즌을 정리할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