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PGA투어 피닉스오픈에서 72홀 대회 최소타 타이 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한 필 미켈슨(미국)은 퍼팅 그립을 바꾼 덕을 톡톡히 봤다. 미켈슨은 한 손으로 그립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아래에서 받쳐주는 일명 ‘집게 그립(claw grip)’을 사용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바클레이스 3라운드부터 이 그립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투어 내에서 퍼팅 랭킹 50위권 안팎의 무난한 실력을 갖고 있었던 그는 2009년부터 3년간 130위권 이하로 떨어지며 ‘퍼팅 난조’에 시달렸다. 벨리 퍼터를 사용해보고 그립도 여러 차례 바꾸면서 변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L자형’ 퍼터를 사용하는 그는 “내 퍼팅의 문제점은 퍼터의 샤프트 각도가 앞으로 기울어져 손이 볼 앞에 놓인 채로 임팩트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퍼터의 궤도가 틀어지고 임팩트도 들쭉날쭉해져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팔도 제대로 뻗어주지 못해 퍼터가 타깃 방향으로 충분히 나아가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치이자 퍼팅의 대가로 손꼽히는 데이브 스톡턴과 함께 집게 그립으로 해법을 찾았다. 왼손잡이인 그가 오른손으로 그립을 쥔 다음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아랫부분을 집게처럼 잡는 것. 그는 “집게 그립을 하면 일단 퍼터 샤프트가 지면과 수직을 이루게 되고 모든 것을 고정한 채 어깨만으로 퍼팅할 수 있어 스퀘어한 임팩트가 가능해진다”며 “한 손은 그립에 대고만 있기 때문에 손목을 써서 볼을 때리는(hit) 동작을 할 수 없고 부드럽게 밀어줘야 해 터치감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집게 그립을 사용하는 대표 선수는 크리스 디마르코와 마크 캘커베키아 등이다. 캘커베키아는 미켈슨이 피닉스오픈에서 세운 72홀 최소타 타이 기록 보유자다.

국내에서는 박도규 선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1년 캘커베키아가 집게 그립으로 피닉스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2주 동안 연습한 뒤 충청오픈에서 이를 사용해 생애 첫 우승을 했다. 그는 “집게 그립은 손목 움직임이 적고 오른손 바닥과 퍼터페이스가 평행을 이뤄 방향성이 좋다”고 평했다.

타이거 우즈의 스윙 코치인 숀 폴리는 “스트로크를 하는 동안 손목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퍼팅 그립을 사용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손목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그립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이 보내고 싶은 라인 위로 볼을 가장 안정적으로 굴리는 방법은 몸통으로 하는 스트로크로 상체가 시계추처럼 앞뒤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손은 퍼터 그립을 잡고 흔들지만 손목은 대부분 고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나오는 퍼터는 로프트가 거의 없어 스트로크의 궤도가 아니라 임팩트 때 페이스의 위치가 볼의 구르는 방향을 결정한다고 폴리는 설명했다. 그는 이를 위해 “손목을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립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4장의 사진 가운데 맨 위 사진은 미켈슨이 최근에 사용 중인 집게 그립이고 그 아래 사진은 집게 그립과 비슷하지만 오른손 잡는 법이 다르다. 세 번째 사진은 왼손이 아래로 가는 ‘크로스 핸디드 그립’으로 박인비 등 톱프로 선수들이 손목을 덜 쓰기 위해 애용하는 방법이다. 맨 아래 사진이 일반적인 그립이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