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서 3위권 기록에도 '실격'

제94회 동계전국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20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누구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빙판에 발을 딛는 한 선수가 있었다.

한국 롤러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으로 활약해 온 우효숙(27·청주시청).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EP 10,000m 금메달,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4관왕 등을 이룬 '롤러 여왕'이다.

"또다시 누군가를 넘어서고 싶다"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 그는 이날 여자 일반부 3,000m 경기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데뷔했다.

첫 공식대회 완주 기록은 4분29초77. 예상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내 장내 방송은 우효숙의 '실격'을 알렸다.

경주 도중 빙판 위에 놓인 고깔모양 장애물을 건드린 것이다.

기록만 놓고 보면 이날 3위에 오른 이주연(동두천시청·4분31초64)보다 나았지만 엉뚱한 데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경기를 마치고 만난 우효숙은 연신 아쉬움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실격당한 부분이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요.

사실 그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서 페이스가 흐트러져 넘어질 뻔도 했어요.

그래도 첫 시합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네요.

"
어릴 때도 빙상장에 가본 적이 없었던 그는 "처음에는 워밍업도 못 따라갈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자비를 들여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하루 7시간씩 이어지는 훈련을 소화하면서 점차 운동선수다운 감각을 살리기 시작했다.

우효숙을 지도한 최근원 코치는 "효숙이는 운동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코치는 "경력으로만 따지면 사실 오늘 같은 기록은 나올 수 없다"면서 "속도를 끌어올리고 유지하는 능력을 이미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빙상에서는 롤러를 탈 때와 다른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이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효숙 스스로도 장비의 특성에 따른 차이점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보고 있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날의 뒤쪽이 떨어지는 것에 특히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인라인에서는 다른 선수들과 몸을 부딪치면서 하다 보니 옷을 잡아당기는 등 심한 반칙에 실격을 주는데 여기서는 오늘 같은 경우에도 실격을 당할 수 있다"면서 "오늘 배웠으니 이제 절대 실수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올림픽 출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효숙은 스피드스케이팅 도전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중"이라면서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행했다는 것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타고난 것보다는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기에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태극마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스케이터로서 첫발을 내디딘 우효숙은 다음 날 1,500m 경기에도 나설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