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가 특히 섬세한 것 같습니다.작은 책들에 제목을 다 적어놓은 점이나, 태극기의 건곤감리까지 정확하게 그린 걸 보면 뭐랄까요…상당한 배려가 느껴집니다.아, 이분이 작가님이신가요?"

한 40대 남성 관람객이 그림을 칭찬하고 돌아서자, 옆에서 이를 가만히 듣던 작가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폐성 발달장애 청년인 이찬규(21·지적장애 3급)씨다.

지역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로 일하는 그의 꿈은 전문 미술가다.

그는 이번에 스페셜올림픽 '에이블아트 갤러리'(Able Art Gallery) 전시회의 '아트 링크 프로젝트'(Art Link Project) 부문에 아크릴화 10점과 수채화 4점을 출품했다.

아트 링크 프로젝트는 지적장애인과 국내 중견 예술가가 각각 멘티와 멘토로 만나 함께 미술·사진·영상 작품을 완성해 공개하는 행사다.

이씨의 멘토는 이탈리아 로마 국립 아카데미 출신의 박은선(51·여) 미술작가.

장애인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에이블아트의 도움으로 둘의 작업이 시작됐다.

이씨는 4살 때 자폐성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모든 방면에서 비장애 어린이들보다 뒤처졌다.

단 한 가지, '똑같이 그리기'만 빼고.
아들 스케치북을 무심코 넘겨보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6살짜리 꼬마가 교회 예배당에 앉아 크레파스로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었다.

앉은 각도에서 본 강단과 마이크의 위치, 설교자의 움직임, 천장에 달린 조명의 색채와 간격, 주변에 보이는 갖가지 사물의 모양이 누가 봐도 실제와 거의 흡사했다.

어머니 김명혜(54)씨는 "부모인 나조차도 아이를 다시 보게 됐다"며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문제가 안됐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그림은 취미로 틈틈이 그려왔지만, 청소년기에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어 전시회는 꿈도 못 꿨다.

그래서 이번 멘토 박은선 씨와의 작업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이씨는 무엇이든 한번 보기만 하면 사진 찍듯 머릿속에 입력했고, 이내 그림으로 구현해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작업에 몰입하면서 속도는 더 빨라졌고, 처음 시도한 아크릴 작품 10점을 3주 만에 완성했다.

자연 풍경, 부엌, 거실, 책상, 소식지, 가족, 친구 등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아기자기한 것들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박은선 멘토는 이씨가 더 집중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코치하며 기운을 북돋워 줬다.

박 씨는 "찬규에게는 애정이 깃든 장소나 사람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면서 "때로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었지만 그림 그릴 때 행복해하며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 걸린 작품 중 이찬규씨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네 개의 나무가 있는 겨울 풍경.'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외로운 호수, 메마른 땅과 인적없는 길을 차분한 색감으로 묘사했다.

"겨울이 와서 나무 위에 단풍이 다 떨어졌어요.

겨울이지만 전날 비가 내려서 눈은 다 녹았어요.

멋있고 마음에 들어요.

느낌이 좋아요.

"
이찬규의 씨를 비롯한 지적장애인 10명이 중견 작가들과 짝을 이뤄 완성한 아트 링크 프로젝트 전시회는 5일 2013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이 끝나는 5일까지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계속된다.

(평창연합뉴스) 강은나래 기자 r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