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24)은 박세리(35)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당시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 그는 “90타 정도 치던 실력이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14년 뒤 박세리가 우승했던 바로 그 현장인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챔피언십코스(파72·6954야드)에서 8일(한국시간) 열린 제67회 US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최나연은 7언더파 65타를 쳤다. 프로 대회에서 65타는 컨디션이 좋은 날 종종 나오는 기록이다. 그러나 ‘오버파 우승자’ 배출을 목표로 하는 USGA(미국골프협회) 주관 대회에서 65타는 경이로운 스코어다. 이날 선수들의 18홀 평균 스코어가 76.9타인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틀간의 찌는 듯한 폭염 대신 사흘째에는 강한 바람이 코스를 휘감으며 5오버파를 치면 그런대로 무난한 스코어였다.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5명에 불과했다. 이런 와중에 7언더파는 다른 코스에서 거의 11~12언더파에 견줄 만하다.

최나연은 이에 힘입어 합계 8언더파 208타로 2위 양희영(23)에게 6타 앞선 단독선두에 나섰다. 스코어상으로는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이 눈앞에 있다.

최나연은 “오늘처럼 바람이 심한 날 버디 8개(보기 1개)를 잡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지점에 볼을 갖다놓으려고 노력했다. 캐디가 불러준 거리를 믿고 쳤는데 14개 클럽이 모두 잘 맞았다”고 말했다. 퍼트 수는 26개에 불과할 정도로 치는 족족 들어갔다. 페어웨이는 단 2차례만 놓쳤고 아이언샷은 18차례 중 15차례 그린을 적중시켰다. 미셸 위가 전날 기록한 코스 레코드(66타)를 1타 경신했고 US오픈 사상 3라운드 최소타 타이기록이다. US오픈 18홀 최소타 기록은 1994년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이 작성한 63타다.

최나연은 1, 2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7, 8번홀에서도 버디를 추가, 전반을 32타로 마무리했다. 10~12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수확한 최나연은 13번홀(파3)에서 3퍼트로 첫 보기를 했고 17번홀에서 4.5m 버디를 노획했다.

최나연은 “9살인가 10살일 때 박세리가 여기서 양말을 벗고 샷을 해 우승까지 이룬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사건이 골프를 갓 시작한 나의 꿈을 바꿔놓았다. 한국에서 우승하고 싶었던 꿈이 미국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날 긴장되겠지만 자신있다. 난 내가 해야 할 일과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나연은 투어 통산 5승을 거뒀으나 메이저 우승은 없다. 최나연이 우승하면 박세리(1998년), 김주연(2005년), 박인비(2008년), 지은희(2009년), 유소연(2011년)에 이어 한국인으로 여섯 번째 US여자오픈 챔피언이 된다.

그러나 전날의 베스트 스코어가 마지막날 예상치 못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크리스티 커는 “남들이 5오버파를 칠 때 최나연은 7언더파를 쳐 무려 12타나 잘 쳤다. 통계적으로 이틀 연속 이렇게 치기는 어렵다”고 예상했다.

박인비가 합계 1오버파 공동 7위, 유소연은 합계 3오버파 공동 15위, 박세리는 합계 5오버파 공동 25위다. 청야니는 이날 78타를 쳐 합계 8오버파로 공동 38위에 그쳐 사실상 ‘최연소 커리어-그랜드슬램’은 힘들게 됐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