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주 "꿈의 61타 또 칠 수 있냐고요?⋯문제없어요"
김효주 "꿈의 61타 또 칠 수 있냐고요?⋯문제없어요"
일본에서 막 귀국한 김효주(17·대원외고2)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11일 오후 잠실 롯데호텔 커피숍. 창밖의 롯데월드 바이킹 놀이기구를 보고 “와! 저거 타고 싶은데…”라며 눈을 커다랗게 뜨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였다.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자이로드롭을 몇 차례 타봤는데 처음에는 거의 울 뻔했지만 한 번 타고 나니까 계속 타고 싶더군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연신 팔을 주물러댔다. “일본 대회 우승 트로피가 너무 무거웠어요. 알이 배긴 것 같아요.”

일본 LPGA투어 산토리레이디스오픈 마지막날 11개의 버디를 잡고 11언더파 61타를 친 얘기를 꺼냈다. “첫째날과 둘째날 모두 1언더파로 잘 못쳤어요. 퍼팅이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날 그동안 안 됐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아요. 대회에 나가면 하루 정도는 이런 날이 있어요.”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8언더파였으나 이번에 3타를 한꺼번에 줄였다. ‘앞으로 61타를 어떻게 깨느냐’고 했더니 “잘 치면 깨지겠죠”라고 답했다. ‘잘될 때 어떤 생각이 드냐’는 질문엔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겨 치는 것에만 집중하죠. 그러니까 더 잘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16번홀까지 11언더파였는데 남은 두 홀에서 버디를 하면 59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는데 그는 “전혀 안 했어요. 끝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다른 건 신경 안 썼어요. 사실 그날 버디를 너무 많이 해서 몇 개 했는지도 몰랐거든요. 버디 계산하고 칠 여유도 없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일본 프로골프대회의 플레이 속도가 매우 빠른 데 놀랐다고 했다. “한 샷에 30초밖에 안 줘요. 파4홀의 경우 120초에다 10초를 추가로 줘요. 131초가 되면 그때부터 2벌타 대상이죠. 앞팀이 안 보이면 무조건 뛰거나 뛰는 척이라도 해야 해요. 동반자 언니들이랑 거의 뛰었어요. 골프를 한 게 아니라 마라톤을 한 거 같았어요.”

국내 프로골프에서는 홀에서 가장 먼저 치는 사람에게 50초, 그 다음 선수에게 40초를 준다.

“대회를 앞두고 한 샷에 30초라는 말을 듣고 엄청 겁을 먹고 무조건 빨리했어요. 나중에는 너무 빨리하다 보니 급해지는 거 같아 천천히 여유를 갖고 했지요. 일본은 시간 관리가 철저해서 전반 2시간10분, 후반 2시간10분 해서 딱 4시간20분 만에 18홀 라운드가 끝나요.”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 샷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최연소 우승으로 일본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들의 갤러리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아마추어 선수인데도 일본 선수와 똑같이 응원해줘서 감사했어요. 룰도 굉장히 잘 지키더라고요.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고요해져요. 휴대폰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어요. 선수들이 먼저 지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한 명도 앞질러가지 않아요. 많은 것을 배우고 온 기분이에요.”

프로암 만찬 때는 일본말을 한국어로 소리나는 대로 받아 적은 종이를 들고 읽었다. 그랬더니 일본에서 활약 중인 ‘맏언니’ 이지희(33)가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줬다고 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선수들의 종착역인 미 LPGA투어 무대로 가야죠.”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기”라며 “소, 돼지, 닭고기 다 좋아하지만 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이 안 맞아 일본투어로 가면 안 되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돈가스와 데판야키(철판구이)가 너무 맛있었고, 새우초밥도 좋아한다”고 받았다.

그는 뜻밖에도 ‘축구 마니아’다.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코치님인 한연희 프로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함께 골프를 배우는 오빠들과 쉬는 날이면 축구를 해요. 여자는 저 혼자예요. 축구를 시작하면 오빠들이 절 여자로 안 봐요. 너무 세게 차서 ‘여자에게 이럴 수 있냐’고 하면 오빠들이 ‘네가 무슨 여자냐’라고 해요.”

골프선수가 축구하다 다치면 큰일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 발목을 삐끗한 적이 있었지만 금방 나았다”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