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병처럼 몸을 숨긴 밖을 내다보니 중대백로 몇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사냥하고 있다. 어도 왼쪽으로 난 습지 내부관찰로로 들어선다. 습지에는 갈대 · 수련 · 고마리 · 부들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물에 녹아 있던 오염물질을 영양분으로 흡수하고 줄기와 잎으로는 물의 유속을 줄여 부유물질들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하는 습지식물들이다. 사람의 마음에도 부유하는 온갖 감정을 여과하는 습지가 있다면 평상심을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도심 한복판이 돼버린 소설 '상록수'의 무대

은백색 갈대꽃이 물결처럼 출렁거릴 가을날의 습지를 떠올리며 심훈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 모델이었던 최용신(1909~1935)의 흔적을 찾아 본오동 샘골(옛 화성군 반월면 천곡)로 간다. 상록수역 건너편 상록수공원을 오르자 이내 최용신기념관이 나타난다. 먼저 '농촌사업가 최용신'과 그의 약혼자 김학준의 묘를 참배한다.

최용신은 1931년 YMCA 소속으로 이곳에 들어와 문맹 퇴치 등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다 1934년 일본 고베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신병 때문에 귀국한 후 다시 샘골로 내려와 휴양 겸 농촌운동을 전개하다가 소장이 대장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으로 죽었다.

무교회주의 기독인 김교신(1901~1945)은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언덕 위에 덩그런 학원은 고 최양이 창자가 꼬여지도록 애써 지은 건물이라 함에 널 한쪽,흙 한 줌도 무슨 신성한 물건 같아 보인다. (중략) 참으로 산 자는 단 하루를 살았어도 영생한 것이다. '(1939년 2월28일) 기념관에 전시된 '샘골고등농민학원' 출석부와 등사기가 초등학교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일깨운다.

백성이 당면한 현실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다

조선 후기 실학의 종장 성호 이익(1681~1763)의 묘를 찾아 상록구 일동으로 향한다. 성호기념관과 인접한 안산식물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켄차 야자 등 열대식물과 서흥구절초 · 넉줄고사리 · 석위 등 우리 식물들을 돌아본 후 두 부인과 합장한 성호 선생의 묘를 향해 성호기념관 건너편 구릉을 오른다. 직계 후손이 없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67년에야 성호이익추모회가 정비한 묘역에는 뒷면에 묘갈명을 새긴 향로석 · 망주석 등이 우두커니 서 있다.

둘째 형 이잠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사건에 충격을 받은 이익은 성호라는 호수가 있었던 이곳 첨성촌(안산 일동)에서 재야의 선비로서 평생 은둔했다. 그러나 체제공이 묘갈에 '비록 초야에서 지냈지만 당세로써 자신의 근심을 삼지 않은 적이 없어 《곽우록》 《새설》을 찬술하였다'고 썼듯이 시대와 현실에 완전히 등을 돌린 건 아니었다. 《성호사설》 등 저서를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하곤 했던 것이다.

《성호사설》 등 저서와 초서체 친필과 간찰,《열하일기》 《여유당전서》 등 실학자들의 저서들이 전시된 기념관을 돌아본 후 부곡동 청문당으로 향한다. 유시회(1562~1635)가 지었다고 전하는 이 집은 이익이 살았던 성호장과도 가까워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조선 후기 남인 문인들의 교류와 실학의 산실이 되었던 곳이다.

수리산 수암봉(398m) 아래 안산읍성 및 관아지로 발길을 옮긴다. 1989년에 터를 발견한 후 관아 터에 남아 있던 주초석을 근거로 복원한 객사가 어색한 몸짓으로 나그네를 맞는다. 관아와 마을을 감쌌던 고려 후기의 읍성은 안타깝게도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김여물과 4대 열녀를 기리는 정문인 와동 사세충렬문으로 간다. 김여물(1548~1592)은 임진왜란 때 신립과 함께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과 싸우다 밀리자 강에 투신해 순국한 장수다. 어찌 콩 심은 데서 팥이 나겠는가.

김여물의 후실인 평산 김씨를 비롯해 아들,손자,증손자의 처 등 4대도 병자호란 당시 청군으로부터 정절을 지키려고 강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충렬문 위에 있는 김여물의 묘와 도심 속에서 한적한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초지동 화랑저수지를 들러 고잔동 단원전시관으로 간다. '원화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나는 복제품으로 즐기면 된다'는 프랑스 '서정추상' 화가 조르주 마튜의 말을 길라잡이 삼아 전시된 단원의 영인본 그림들을 돌아본다. '기와이기' '씨름' 등 풍속화가 나를 먼 유년시절로 이끈다.

'느림'이라는 비효용성을 즐기며 걷는 협궤 철길

중앙역 뒤로 가 1995년 폐선된 옛 수인선 협궤열차 철길을 따라 걷는다. 사설 철도회사인 경동철도주식회사가 1937년에 부설한 수인선은 일제가 이 지역의 미곡과 소금을 수탈해 가기 쉽도록 놓은 철길이었다. 협궤열차는 너비 0.762m의 좁은 철길을 타고 수원~인천 간 총 연장 52㎞를 1시간40여분에 달렸다. 58년4개월간 운행됐던 철길은 이제 개망초꽃과 구절초를 동무 삼아 적막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고잔역께에 이르자 협궤열차 모형과 모형신호등이 나타난다. '꼬마열차'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작고 앙증맞다. 시속 30여㎞로 달리던 시대는 물질은 풍요롭지 못했지만 삶의 내용은 지금보다 훨씬 덜 팍팍하고 여유로웠다. 효용을 우선시하는 시대는 야박하게도 운행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이 철로를 용도폐기했지만 우린 이제 '느림'이라는 비효용성을 그리워하는 시대의 플랫폼에 당도해 있다. 삶의 내용물을 채우는 데 느림처럼 커다란 효용을 지닌 것도 드물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단원구 성곡동 반월산업단지 내에 있는 잿머리성황당.봉긋하게 솟은 해봉산을 오르자 정면 3칸,측면 1칸의 성황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집 앞에선 중년의 여자가 조촐하게 제를 올리고 있다. 고려 성종 때 10여년간 단절된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송나라로 가던 서희가 이곳 나루에 머물렀을 때 지었다는 성황당이다. 당집 안에는 서희의 꿈에 나타나 거처를 만들어줄 것을 애원했다는 경순왕의 세 번째 부인 홍씨와 그녀의 어머니 안씨 부인의 영정 등이 보관돼 있다. 이 성황당은 아직도 마을 주민들의 신앙처가 되고 있다.

초지동 열병합발전소 앞 별망성을 오른다. 안산지역의 해안 방어를 위해 돌로 쌓은 조선전기 산성이다. 육상 전투에도 대비하기 위해 수군만호가 주둔하던 진영의 뒷산 능선을 연결해 쌓은 성을 1988년에 둘레 1040m중 225m만 복원한 것이다.

성 꼭대기에 오르자 발전소 굴뚝 너머로 광활한 시화호 간척지가 바라다보인다.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다'는 《유마경》 속 유마거사의 말이 떠오른다. 아,중생인 저 자연이 원시 그대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면 내 병도 저절로 나을 것을….


● 싸고 푸짐한 한정식…풍도·육도 들러 짜릿한 '바다낚시'

◆ 맛집

상록구 사동 1352의 6 한정식집 들녘(031-416-9292)은 옛 정취 가득한 실내외 분위기와 정갈하고 단아한 한정식 맛이 조화를 이루는 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상차림이 매우 푸짐하다. 들녘정식 1만원,쇠고기 석쇠구이 1만2000원.

낙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상록구 사동 1348의 8 우리옥((031-437-0021)도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낙지볶음 1만5000원,낙지전골 1만5000원.

◆ 여행정보

시화호갈대습지공원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매주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 이용시간은 하절기(3~10월) 오전 10시~오후 5시30분,동절기(11~2월) 오전 10시~오후 4시30분.주변에는 광활한 수변공원이 펼쳐져 있어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가롭고 여유 있는 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풍도·육도가 있다. 대부도에서 직선거리로 16㎞ 떨어진 작은 섬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풍도가 아니라 우럭·노래미 등 각종 수산자원이 풍족하다고 해서 풍도라 불렀다고 한다. 반짝이는 햇빛과 철 모르는 파도만이 원시의 고요를 깨트리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진장수리해변에서 반질반질한 몽돌을 밟으며 걸으면 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풍도에서 4.5㎞ 정도 떨어진 육도는 20여가구가 모여 사는 고즈넉한 섬.서쪽 해안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낚싯배를 빌려 타고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육도에는 슈퍼가 없으니 필수품은 미리 챙겨가야 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이 육도와 난지도를 거쳐 풍도까지 운항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1544-1114) 왕경해운 (032)883-6538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안산JC→ 안산IC→ 안산IC입구사거리→ 한국통신삼거리→ 대부도·제부도 방면 지하차도→ 안산 갈대습지공원

안병기 <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