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차범근·허정무 개척..박지성 챔스리그 결승 첫 출전
한국선수 우승 세리머니 동참, 미완의 과제

세계 축구는 유럽과 남미가 양분하고 있지만 클럽축구는 유럽 쪽에 무게감이 더 실리는 게 사실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유럽 클럽축구 무대에서 정상을 향한 한국 선수들의 도전사는 1970년대 차범근과 허정무가 열어젖혔다.

한국 팬들이 '유럽 축구'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197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을 일으킨 주인공인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은 1979-1980시즌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컵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은 유로파리그로 이름이 바뀐 UEFA컵은 UEFA 챔피언스리그 다음가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차범근은 레버쿠젠으로 옮긴 1987-1988시즌에도 UE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려 한국 축구의 유럽 진출사에서 선구자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도 1980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진출, 1983년까지 77경기에서 15골을 넣어 차범근 전 감독과 함께 유럽 축구의 문을 활짝 여는 데 힘을 보탰다.

UEFA컵 우승의 영광은 2007-2008시즌 러시아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뛴 김동진과 이호가 한국 선수로는 차범근 이후 20년 만에 다시 한 번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UEFA컵(유로파리그)보다 한 차원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챔피언스리그는 아직 한국 선수는 물론 아시아 선수에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는 격이 다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시즌 1~3위 팀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주고, 4위 팀에는 챔피언스리그 예선 출전권, 5위 팀에는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주기 때문이다.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는 속설처럼 챔피언스리그에 연관된 '머니 게임' 규모를 보면 입이 벌어질 만하다.

우승 상금이 900만 유로(138억원)에 달하고, 준우승 상금도 560만 유로(86억원)나 된다.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축구 팬들이 TV 중계를 지켜보기 때문에 광고 효과도 상상을 초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이런 UEFA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출전한 한국 선수는 설기현(포항)이었다.

2001년 8월 벨기에 안더레흐트에서 뛰던 설기현은 할름슈타트(스웨덴)와의 예선 3라운드 경기에 출전, 골까지 뽑아내는 활약을 펼쳤다.

설기현은 같은 해 9월12일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러시아)와의 경기에도 뛰며 한국 선수 첫 본선 출전 기록을 남겼다.

이천수(오미야)는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소속이던 2004년 2월 올랭피크 리옹(프랑스)과의 16강전에서 후반 교체로 투입돼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처음 뛴 한국 선수가 됐다.

8강 1호 출전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알힐랄)였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를 받던 둘은 2005년 5월 리옹과의 8강전에 나란히 출전했고, AC밀란(이탈리아)을 상대로 한 4강전에도 동반 출격했다.

박지성은 AC밀란과의 4강 2차전에서 득점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본선에서 골을 넣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후로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독보적으로 활약한 한국 선수는 단연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은 2008-2009시즌 결승전인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꿈의 무대'에 서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또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2010-2011시즌 결승전에서도 풀타임 출전해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썼다.

이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 세리머니를 함께하는 일이 미완의 과제로 남은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