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탱크'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이 돌아왔다.

지난해 12월26일(이하 현지시간) 선덜랜드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이후 무려 97일 만이다.

당시 선덜랜드전을 마친 박지성은 곧바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이동해 2011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 대회를 마지막으로 박지성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경기였던 만큼 박지성은 아시안컵 우승에 목을 맸다.

하지만 한국은 3위에 그쳤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간 박지성에겐 부상의 악령이 따라붙었다.

지난 2월 팀 훈련 도중 오른쪽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을 다친 박지성은 3개월이 넘도록 재활에만 몰두했다.

영국 언론과 축구 전문 매체 등은 여름 이적 시장을 앞두고 '박지성 이적설'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게다가 주전 선수 대부분과 재계약을 마친 맨유가 박지성과의 재계약에서는 '장고'에 들어가자 박지성의 이적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지난달 30일 미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반드시 2∼3명을 새로 영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루이스 나니 등 경쟁자들은 건재한 데다, 맨유는 토트넘의 가레스 베일과 네덜란드 출신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밀란)를 새 미드필더로 데려오려는 움직임을 보여 박지성의 팀내 입지는 매우 좁아진 상태다.

퍼거슨 감독의 예고대로 박지성은 3개월 만에 2일 웨스트햄과의 정규리그 원정 경기에 선발 미드필더로 나섰다.

100여일 만에 복귀한 박지성으로선 잇단 '방출설'을 잠재울 기회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박지성은 후반 19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교체되기까지 총 64분을 뛰었다.

3개월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박지성의 몸놀림은 가벼워보였다.

박지성은 주로 눈에 띄지 않는 궂은 일로 팀에 공헌하는 스타일이다.

올 시즌 두자릿수 공격포인트(6골 4도움)를 올리며 2005년 맨유에 입단한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박지성의 활약도는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날도 박지성은 최전방까지 올라가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가 하면 수비 진영까지 내려가 '청소부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이번 복귀전에서만큼은 가시적인 활약이 필요했다.

팀 승리에 이바지하는 공격포인트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했다.

전반 31분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만한 장면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공이 웨스트햄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골문 앞에 떨어지자 문전에 서 있던 박지성은 바로 강하게 슈팅을 날렸지만 공은 그만 정중앙으로 향해 골키퍼 손에 맞고 말았다.

수비수 한 명 없는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이었지만 성급하게 쏜 슈팅은 너무 정직했다.

시즌 7호골로 연결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0-2로 끌려간 맨유는 후반 19분 박지성을 빼고 베르바토프를 투입해 반전을 노렸고, 공교롭게도 박지성이 벤치로 나가자마자 맨유는 무려 4골을 몰아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맨유는 이날 승리로 정규리그 1위 굳히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두 경기를 덜 치른 아스널을 승점 8점차로 앞섰다.

하지만 97일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박지성에게 이날 복귀전은 무난하기는 했으나 퍼거슨 감독의 확실한 믿음을 사기에는 2%가 부족한 '절반의 성공'에 가까웠다.

맨유는 7일(한국시간) 첼시와 2010-2011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치른다.

박지성이 첼시와의 경기에서도 출전해 맨유의 트레블(정규리그·FA컵·유럽챔피언스리그 등 3관왕)에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년 만에 트레블에 도전하는 퍼거슨 감독은 올 시즌 남은 경기를 일컬어 "매 경기가 결승전 같다"고 말했다.

계약 만료를 1년여 앞둔 박지성에게도 남은 경기 하나하나가 자신의 재계약 여부를 판가름할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goriou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