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라우스와 악수할 때도 이런 악력은 느끼지 못했다. 게리 플레이어를 10여년 전 만났을 때의 묵직한 힘.73세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한국프로골프의 산증인 한장상 프로(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는 아직도 '통뼈'였다. 젊은이 못지않은 근력,깊은 곳에서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지금도 20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샷 등은 그의 일면에 불과하다.

한 고문은 호적상으로는 니클라우스와 동갑이나 실은 니클라우스보다 두 살 위다. 최경주 양용은 김경태 등 남자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지금 대선배인 그를 만났다.

◆16세 때 입문

"서울 능동에 있었던 서울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뀌었지.만 16세 때인 1954년에 입문했으니까 골프 인생이 벌써 57년째네."

그는 1972년 일본오픈에서 점보 오자키,도미 나카지마 등 내로라하는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총리대신컵'이라는 명칭이 붙은 첫해 일본 내셔널타이틀을 땄으니 일본 골프계가 숨을 죽일 만했다. 그 덕분에 이듬해엔 한국골퍼로는 최초로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는 창설연도인 1958년부터 2007년까지 50년 연속 출전했다.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남녀 프로골프협회 수장으로 한국골프를 이끌기도 했다. 다만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국내외에서 22승을 거둘 정도라면 최상호 강욱순 김미현 등처럼 우승상금을 종잣돈 삼아 얼마든지 재테크를 할 만했으나,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정 · 재계 유명 인사들과 교류

1960~70년대에 유명 인사들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고 동반라운드도 많이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전 삼성 회장,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모두 고인이 됐지만,지금도 옛일을 회상할 때마다 세 사람을 떠올린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었지.레슨도 해드리고 서울 · 안양 · 뉴코리아CC에서 일곱 차례 동반라운드도 했어요. 안양에서는 이병철 회장이 호스트로 나서 셋이서 돌았지.뉴코리아CC에서는 라운드 후 인근의 유명한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고….박 대통령의 특징은 매 홀 마지막 퍼트(1m 내의 짧은 퍼트)를 하지 않고 캐디에게 볼을 집어들게 한다는 거예요. 그때는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지만,지금 되돌아보니 1인자로서 쪼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본 후 머리와 상체를 구부려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마뜩찮고 몇 뼘 안 되는 짧은 퍼트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좀스럽다고 생각해 그런 것 같아요. 라운드 중에도 보좌관이나 경호처장한테 수시로 '무슨 일 없나' 하고 물으면서 나라 걱정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구먼.그런 열정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

이 회장에 대해서는 '비즈니스와 골프를 한치의 흠도 없이 한 분'이라고 회고한다. "이 회장께서는 골프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분만한 '골프 마니아'를 여태 못봤어요. 한마디로 '골프 젠틀맨'이었지.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쉬울 뿐이야…."

◆출전 대회만 1000개 넘어

골프장 일을 도와가며 골프에 입문한 그는 연습도 악착같이 했다. 한번은 서울CC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연달아 3600개의 볼을 쳤다. 하나 치는 데 10초로 계산하면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칠 양이다. 그것도 맨땅에서 그랬다. 아이언샷을 잘하려면 클럽헤드가 볼부터 맞혀야 하므로 맨땅의 볼을 치면 도움이 되는 까닭이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서울CC에서 하루 113홀을 돈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113번째 홀 세컨드 샷을 한 후 캄캄해져 볼을 집어들었지.나 혼자 한 게 아니라 세 명이 했는데 하루 6라운드하고도 다섯 홀을 더 도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아."

그가 50여년 동안 출전한 대회는 1000개 안팎이다. "900개 대회까지는 세었는데 그 후로는 적어놓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한 고문뿐 아니라 70대인 니클라우스(71),리 트레비노(72),플레이어(75),치치 로드리게스(76) 등은 어렵게 골프를 했다. 장비도 그렇고 환경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볼 치는 능력은 예전 선수들이 더 나았어요. 어느 상황에서도 못 치는 샷이 없었지.나만 해도 드라이버가 퍼시먼이고 웨지는 단 하나(로프트 49도)밖에 없었던 1980년 홍콩오픈에서 하루 10언더파를 쳤으니까. 볼도 잘 쳤지만,즐겁게 라운드했어요. 라운드 중 느닷없이 모형 뱀을 들고 동반자에게 장난하는 트레비노나 그린에서 퍼터로 칼춤을 추는 로드리게스는 얼마나 웃기던지…."

우리 후배들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노력과 정신력으로 미국 무대에서 성공한 최경주는 대단하지.양용은 노승열도 유망하고.김비오는 체격도 좋고 거리도 중상급이어서 통할 수 있고."

◆홀인원하려면 5~7번 아이언 연습

그가 아쉬워하는 것은 한국골프의 현실이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골프 문화나 환경 등은 아직 후진국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아마추어들은 스코어를 잘 내는 요령에만 몰두한다.

"스코어를 낮추려면 스윙의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스윙이나 그립을 제대로 하고 나서 요령이나 테크닉을 배워야 하지.장타도 마찬가지.클럽은 거리를 내는 데 10% 역할만 할 뿐 나머지는 스윙의 기본을 가다듬고 체력단련을 하거나 연습량을 늘려 해결해야 해요. "

그는 또 주니어 선수들이 공부는 등한시한 채 골프에만 전념하는 것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학과 공부와 룰 · 에티켓 등 골프 공부를 병행해야 존경받는 선수가 된다는 것.

그는 홀인원을 열 번이나 했다. 대회에서 여섯 번,친선라운드에서 네 번.지난해 10월 내리막인 뉴서울CC 북코스 3번홀(길이 154야드)에서 9번아이언으로 기록한 게 최근이다.

"홀인원은 정교한 샷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국내 골프장 파3홀 길이는 대부분 150~170야드이니까 5~7번 아이언을 집중 연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

한장상 프로는

1958년부터 2007년까지 50년 연속 KPGA선수권대회 출전 기록을 세운 한국 골프의 산증인.1972년 일본 내셔널타이틀 우승컵을 안았고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골프 코치를 지냈다. 1964년부터 4년 연속 한국오픈 우승,1968년부터 4년 연속 KPGA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프로골프협회 6대 회장(1984~1987)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