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층 아파트 매일 다섯 번 왕복했던 악바리…쉴 땐 드라마에 미쳐요"
"얼마 전까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이 돼서 행복했어요. 김주원(현빈)처럼 멋진 남자와 사랑 다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현실에서는 아직 김주원을 못 만났지만요. (웃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개막전인 현대차이나 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한 김혜윤(22 · 비씨카드 · 사진)은 늘 털털하고 꾸밈이 없다. 대회 초반 성적이 다소 부진해도 금방 잊는다고 했다.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뭘까.

비결은 드라마다. '대물''아테나'등 최근 드라마는 훤히 꿰뚫고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때는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빠져들어요.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의 고민이 확 달아난다니까요. "

또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지난달에는 정재은 김은정 등 또래 다섯 명이 경기도 안산의 대부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친구들은 술도 안 좋아하고 나이트클럽도 가지 않아요. 대부도의 한 펜션에서 중학생들처럼 눈 가리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죠.이런저런 이야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라요. "

김혜윤은 대전 둔산초등학교 2학년 말께 골프를 시작했다. 학창시설 아버지 김정호씨가 "(딸이) 승부욕이 있을 것 같다"며 골프를 배우라고 권한 게 입문 계기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별 볼 일 없는 선수였다. 대전시 예선에서 출전 선수 3명 중 3등에 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전환기를 맞는다. 아버지가 부도로 가게 문을 닫은 뒤 딸에게 '올인'하게 된 것.김혜윤이 골프에 자신감을 갖게 된 '정암배 두산매치플레이'도 그때 열렸다. "하루아침에 열심히 운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어요. 마침 정암배대회 요강을 보니 하루 36홀을 캐디 없이 플레이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체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골프백을 메고 매일 아파트 20층까지 다섯 번씩 왕복했죠.모래주머니까지 차고 오르내렸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혹독한 체력 훈련 덕분인지 정암배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었다. 이후 고등학교(대전체고)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혀 유소연 최혜용 김비오 등 요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더욱 열심히 골프에 몰입하게 됐다. 김혜윤은 "잘하는 선수들과 어울리다 보니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스텝스윙'이다. 드라이버샷을 할 때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움직이며 스윙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거리를 좀 더 내기 위해 발을 움직이다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다. "지금까지는 거리를 15야드 정도 더 보낼 수 있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 스윙을 유지할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그는 스스로 볼을 잘 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예선 통과만 하면 좋겠다' '오버파는 안 쳤으면 좋겠다'처럼 늘 소박하다. 하지만 그의 꿈은 명확하다. 시즌 3승과 함께 상금왕에 올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넘버1'이 되는 것이다. 아직 해외 진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올해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어요. 국내 무대를 정복하면 일본 투어에 나갈 생각은 갖고 있어요. "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