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프로스포츠의 '캐시카우'는 TV중계권이다. 프로리그나 구단들은 TV중계권만 잘 팔아도 1년 장사를 다 했다고 여길 정도다. 방송사와 대행사들은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인다. 중계 채널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방송사들 세 불리기 경쟁

프로리그들은 중계권 협상에서 돈과 함께 보다 많은 경기의 생중계를 원한다. 이에 따라 방송사들은 채널과 시청자 확보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스포츠중계 시장은 그동안 ESPN이라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이 우위를 점해왔다. ESPN은 같은 디즈니그룹 계열인 ABC까지 동원해 주요 중계권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CBS는 채널 부족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타임워너의 자회사인 터너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터너그룹은 케이블채널인 TBS,TNT,truTV를 갖고 있다. CBS는 이 제휴를 발판으로 올해부터 2024년까지 NCAA(전미대학체육협회)의 농구챔피언십 중계권을 따냈다. NCAA챔피언십은 토너먼트를 거쳐 마지막 4개 대학 농구팀이 맞붙는 '파이널포'로 유명한데 '3월의 광란'으로 불리며 전 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NBC는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와 손잡고 대학 미식축구와 하키,골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출혈 경쟁으로 치솟는 중계권료

최근 US오픈테니스대회의 TV중계권이 팔렸다. CBS가 4년간 매년 2000만~25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불과 14일짜리 한 대회 중계권료가 220억~275억원(이하 환율 1100원 계산)이나 된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식축구 중계권료에 비하면 '껌값' 수준이다. 미국의 CBS,NBC,ABC,FOX 등 4대 네트워크 방송사는 미식축구 중계로 매년 각각 6억(6600억원)~7억달러(7700억원)를 '상납'하고 있다. 이 금액은 조만간 10억달러를 돌파할 조짐이다.

중계권료는 태생적으로 '머니 게임'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해야 하는 '치킨 게임'으로 이어진다. CBS가 NCAA농구챔피언십을 놓고 ESPN과 경쟁하면서 제시한 금액은 14년간 108억달러(11조8800억원),연 7억7100만달러(8481억원)다.

'파이널포'를 놓친 ESPN은 미식축구 중계권으로 반격했다. ESPN은 이달 초 미식축구협회와 계약을 갱신하면서 향후 10년간 매년 18억(1980억원)~19억달러(2090억원),총 180억(1조9800억원)~190억달러(2조900억원)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 계약은 2014년부터 적용된다. 2013년까지는 매년 11억달러를 낸다. 재계약하면서 7억~8억달러가 폭등한 셈이다.

더구나 NFL 전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오프 같은 빅 경기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오로지 월요일에 열리는 한 경기 독점 중계권이다. NFL 정규 시즌이 총 16주이므로 16게임에 대한 대가다.

ESPN의 이번 계약은 NFL을 중계하는 네트워크 방송사들에 엄청난 압박이 될 전망이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중계권료로 폭스채널은 57억6000만달러,CBS는 49억6000만달러,NBC는 48억2000만달러를 NFL에 전달했다. ESPN의 과도한 중계권료 지불로 재계약시 부담이 두 배 이상 폭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도 '머니 게임' 양상

'중계권 전쟁'은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진행 중인 여자프로골프(KLPGA)의 중계권료 협상에서도 가격이 폭등했다. KLPGA는 IB스포츠를 방송중계권 대행사로 선정하면서 대행료로 3년간 매년 8억원을 책정했고 중계권료 수입을 7 대 3으로 나누기로 했다. 8억원을 낸 IB스포츠는 최소한 연간 27억원을 받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IB스포츠는 연 36억원,총 108억원을 써냈다. 대행료 8억원은 지난해 2억5000만원보다 3배 이상 급등한 금액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중계권료로 공중파 3사로부터 180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108억원보다 60% 올랐다.

◆중계권 비즈니스 급부상

최근 재협상에 들어간 미국 PGA투어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투어 측은 CBS와 NBC로부터 2007~2012년 중계권료로 각각 29억5000만달러를 받았다. 타이거 우즈라는 걸출한 스타 덕에 높은 중계권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하필 재계약 협상 기간에 우즈가 슬럼프에 빠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중계권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즈니스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 구단이 이승엽과 박찬호를 동시 영입해 국내 방송사로부터 짭짤한 수입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구단이 직접 홈경기 중계권을 판매할 수 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뛸 때 중계권료는 60억~70억원이었다. 오릭스도 이에 준하는 금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