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7일, 마침내 한국인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되찾았다.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함께 이끌었던 허정무(55) 감독이 2000년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을 끝으로 그해 11월 사령탑에서 물러나고 나서 약 7년 만이었다.

2000년 허 감독이 퇴임하고 나서 대한축구협회는 이듬해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그 이후로도 대표팀 사령탑은 줄곧 외국인 지도자의 몫이었다.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이상 네덜란드) 등이 차례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을 때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리를 올렸을 때도 공은 외국인 지도자에게 돌아갔다.

7년 만에 다시 한국인 사령탑 시대를 연 것은 공교롭게도 외국인 감독에게 바통을 넘겼던 허정무 감독이었다.

K-리그 전남 드래곤즈를 이끌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한 허정무 감독의 취임 일성은 "축구인으로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였다.

한국인 지도자의 미래는 다시 그의 양 어깨에 달렸다.

허정무 감독의 당면과제는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2008년 1월30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 친선경기(0-1 패)에서 선을 보인 허정무호는 첫 발걸음이 순탄치 않았지만 이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북한과 두 차례 맞대결을 0-0으로 비기고, 약체 요르단과 홈 경기에서도 2-2로 무승부를 거두는 등 불안감을 안겨주면서도 3승3무로 조 1위에 올라 최종예선 출전권을 땄다.

`허무 축구'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 시작한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아시아 전통의 강호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물론 3차 예선에서 맞붙었던 북한 등과 한 조에 속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2008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정 3차전에서 2-0 완승을 거둬 19년간 이어졌던 `사우디아라비아전 무승 징크스'를 털어내고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른 이란과 최종예선 4차전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기고 나서, 4월 북한(1-0 승)을 넘었고 마침내 6월7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이기며 두 경기를 남겨놓고 일찌감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한때 벼랑 끝에 내몰렸던 허정무 감독은 특유의 뚝심으로 한국축구의 세대교체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결국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유쾌한 도전에 나설 자격을 얻었다.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B조에 속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달 12일 포트엘리자베스에서 그리스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 완승을 이끌었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서곡이었다.

허 감독은 한국인 사령탑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를 경험했다.

같은달 17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른 아르헨티나와 2차전에서는 1-4로 대패했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엿새 뒤 나이지리아와 3차전에 나서 2-2로 비기며 1승1무1패, B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이후 56년 만에 처음 이룬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비록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1-2로 아쉽게 패해 더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허정무 감독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그리고 그는 최장수 대표팀 사령탑 기록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했다.

2일 대한축구협회와 재계약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인 지도자들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허 감독의 퇴임 인사는 "국내에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은 만큼 좋은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