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순간, 17일 오후 8시 30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B조 예선 두 번째 경기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과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간 운명을 건 한판입니다.

만약 누군가 "아르헨티나 팀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허풍'일 뿐입니다.
허정무 한국대표팀 감독 조차 경기에 대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실이지만 양팀간의 전력 차이가 얼마나 큰 지 구체적인 수치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피파(FIFA) 랭킹.
7위(아르헨티나)와 47위(대한민국)로 무려 40계단이나 앞서 있습니다.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채 2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력을 나타내는 가장 현실적인 수치인 대표 선수들의 '몸값'에선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독일의 축구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몸값은 3억4730만유로(5150억원)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팀은 4435만유로(657억원)에 불과합니다.
아르헨티나가 7.8배 높습니다.
아르헨티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의 몸값(8000만유로)만 따져도 한국 대표팀 전체의 2배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약간 우스갯소리를 보탠다면 남아공 현지의 '여론을 좌지우지 한다'는 무당들 조차 이번 대회 우승국으로 브라질이나 스페인 영국 독일 등을 제치고 ‘아르헨티나’를 점친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이 팀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선수(메시)가 있어서'라 하고요.
반면 한국대표팀에 대해선 "점점 기력을 잃고 약해져 16강에 진출할 수 없다"는 소릴 내뱉는다고 합니다.

실제 메시 두려운 존재입니다.
지난 12일 열린 첫 경기 대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준 '언터처블' 드리블은 '환상'이었습니다.

볼을 축구화 끝에 붙인 채 달라붙는 수비수 몇 명을 '허수아비' 또는 '관광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저런 동작 상태에서 몸의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솟게 했습니다.
게다가 한 박자 빠르면서도 힘을 전혀 넣지 않는 듯한 부드러운 동작에서 나온 강력한 슈팅은 '타의 추종' 을 불허합니다.
이 슈팅은 1mm의 오차도 없이 휘어지면 목표지점으로 보이는 골대 구석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가공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합니다.

현실적 상황이 이처럼 불리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경기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공은 둥글다."
이 말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서독(독일) 대표팀의 제프 헤어베르그 감독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세계 제2차대전 패전국인 서독팀은 이 대회 결승에서 푸스카스로 대표되는 공산국가 헝가리 대표팀과 만나 혈전끝에 3 : 2 스코어의 승리를 거두고 월드컵 대회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헤어베르그 감독이 이 말을 한 배경이 흥미로운데요.
서독팀은 스위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 경기에서 헝가리팀과 만나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3골을 넣기는 했지만 무려 8골이나 내주며 '대패'한 것입니다.
때문에 양팀간 결승을 앞두고선 당연히 '헝가리팀의 절대 우세'가 예상됐다는 겁니다.
(당시 스위스 월드컵 월드컵에 처녀 참가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예선에서 헝가리에 무려 9골이나 내줬습니다.
지금까지의 역대 월드컵 최다실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만큼 헝가리는 '무시무시한' 팀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월드컵에서 서독이 헝가리를 꺾는 '이변'은 전세계의 축구팬들 앞에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둥근 축구공은 강팀이라고 '주사위처럼' 굴러가다 골문 앞에서 딱 멈출 리가 없는 까닭입니다.

이 후 "공은 둥글다"는 말은 축구에서 '이변'의 대명사처럼 굳어졌습니다.
경기 전까지 '절대 열세'라 평가된 팀들이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강팀을 누른 사례가 수도 없이 나타났기 때문이고요.

허 감독이 '이변'을 전제로 한 이 말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아르헨티나전의 승리 방정식을 세웠다는 걸 증명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각종 매체 등을 통해 나온 아르헨티나 전에 대한 필승 전략은 과거 새마을운동의 모토에 꼭 들어맞고 있는 듯 합니다.
기억하시지요?

각 학교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마름모꼴' 테두리안에 한 글자씩 써 내걸렸던 표식.
<근><면> <자><조> <협><동>
1.근면-필드 플레이어 열명은 '최소' 10Km 이상 뛴다.
2.협동-수비수 여러 명이 둘러싸 메시에게 ‘암바’(압박)를 가한다.
3.자조-세트피스와 역습기회에서 골 결정력을 보인다.

이번 월드컵에서 채택된 공인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변의 주인공인 독일에 본사를 둔 아디다스의 '자블라니'입니다.
자블라니는 표면의 가죽 조각을 기존 12개에서 8개로 줄여 구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르헨티나 전을 앞두고 새로운 '대이변' 대명사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은 둥글다. 자블라니는 더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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