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전력의 `무적함대' 스페인이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에 가까스로 승리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스페인은 4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평가전에서 팽팽한 0-0 균형을 이어가던 후반 40분 헤수스 나바스의 그림 같은 결승 중거리포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승리는 챙겼지만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를 제패했고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히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스페인으로선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지난달 3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 선발로 나섰던 공격수 다비드 비야와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스, 다비드 실바, 수비수 카를레스 푸욜, 헤라르드 피케 등 주축을 빼고 1.5진급으로 운영했어도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으로선 경기 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스페인은 자칫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에서 악몽이 재연될 뻔했던 셈이다.

당시 스페인과 8강에서 만난 한국은 연장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몰고 갔고 골키퍼 이운재가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홍명보가 마지막 골을 성공시키면서 극적인 5-3 승리와 함께 준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경기는 무승부로 기록됐지만 한국은 스페인을 제물 삼아 `4강 신화'를 창조했다.

스페인은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에 깊은 좌절을 안겼던 팀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상대였던 스페인을 맞아 황보관이 시원한 득점포를 가동했지만 끝내 1-3으로 무릎을 꿇었고 결국 3전 전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이어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1차전에서 스페인과 재격돌한 한국은 0-2로 끌려가다 후반 40분과 추가시간에 홍명보와 서정원의 연속골로 극적인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한국은 이후 볼리비아에 0-0 무승부, 독일에 2-3 패배로 2무1패가 되면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월드컵 악연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180도 달라졌다.

한국이 안방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침몰시키며 4강 진출 쾌거를 이뤘던 것.
이후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양팀은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1주일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 상대로 만났고 스페인은 후반 비야와 실바, 사비 등을 교체 투입하는 강수를 두고서야 비로소 1-0 진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스페인은 한.일 월드컵 때 8강 탈락 수모를 안겼던 한국에 설욕했지만 월드컵 우승 후보다운 저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평가전이었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