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쐐기골..'도쿄 대첩' 재현


축구 태극전사들이 일본의 안방에서 또 한 번 `울트라 닛폰'을 울렸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72번째 한일전에서 `영원한 맞수' 일본을 상대로 기분 좋은 승전가를 부르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 진출 희망을 이어갔다.

한국은 24일 오후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전반 6분에 터진 박지성의 환상적인 선제 결승골과 후반 추가시간 박주영의 페널티킥 쐐기골을 앞세워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했다.

민족의 명절 설이었던 지난 2월14일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축포 세 방을 쏘아 올리는 `도쿄 대첩'을 완성했던 태극전사들은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18일 앞두고 일본을 또 한 번 침몰시켜 자신감을 충전했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최근 3경기 연속 무패(1승2무) 행진을 벌이며 상대전적에서 40승20무12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다.

지난 2007년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허정무 감독은 지난 2월 동아시아선수권 일본전 3-1 역전승과 대표팀 출정식이었던 16일 에콰도르전 2-0 승리에 이어 쾌조의 3연승 행진을 지휘했다.

취임 후 허정무호 성적은 A매치 38경기에서 21승13무4패.
반면 남아공 월드컵 4강 진출을 목표로 제시했던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한일 맞대결에서 또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였다.

한국 대표팀은 25일 곧장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넘어가 벨라루스(30일), 스페인(6월3일)과 각각 평가전을 치르고 나서 `결전의 땅'인 남아공에는 6월5일 입성한다.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가슴에 새긴 태극전사들이 6만3천여 스탠드를 `울트라 닛폰'의 푸른 물결로 가득 채운 사이타마의 스타디움의 밤을 깊은 침묵에 빠뜨린 통쾌한 한판이었다.

3개월 전 통쾌한 설 축포로 `도쿄 대첩'을 만들었던 주인공들이 99일 만에 성사된 일본과 리턴매치에서 설욕을 노리던 `사무라이 후예들'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겼다.

허정무 감독은 공격 쌍두마차로 발이 빠른 이근호와 `왼발 달인' 염기훈을 세우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박지성과 이청용을 좌우 날개로 펴는 4-4-2 전형을 선택했다.

중앙은 단짝 미드필더 김정우-기성용 듀오가 호흡을 맞추고 포백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이영표-이정수-곽태휘-차두리가 늘어섰다.

이운재에게 밀려 벤치 신세였던 정성룡이 두 경기 연속 골키퍼 장갑을 꼈다.

지난 16일 에콰도르와 평가전 때 뛰지 않았던 이근호를 최전방에 배치하고 같은 일본 J-리거 이정수와 곽태휘를 중앙수비수 조합으로 실험했다.

또 대표팀 합류가 늦었던 이영표와 허벅지 부상을 털어낸 차두리도 선발로 기용했다.

6만여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태극전사들을 들러리로 만들려고 했던 `오카다 재팬'은 박지성의 그림 같은 중거리포 한 방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본은 오카자키 신지를 원톱에 세우고 해외파 혼다 게이스케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4-5-1 포메이션으로 맞불을 놨다.

일본이 안방 출정식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이겨도 본전'인 한국은 최종 엔트리(23명)를 확정하려는 옥석 가리기를 계속하면서도 베스트 11 중 무려 8명을 해외파로 기용해 승리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경기 초반 탐색전을 벌이며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던 한국은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 중원사령관 기성용과 오른쪽 측면을 활발하게 돌파하는 이청용을 앞세워 공격 주도권을 잡았다.

`쌍용' 기성용과 이청용이 활기를 불어 넣자 `캡틴' 박지성이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며 천금 같은 선제골을 뽑아냈다.

전력을 숨기려고 자신의 등번호 7번 대신 14번을 하고 나온 박지성은 전반 6분 상대 오른쪽 미드필드 지역에서 일본의 패스를 끊고 공을 가로채 질풍같이 페널티지역 정면까지 몰고 갔다.

박지성은 빠른 드리블에 이어 지체하지 않고 오른발로 강한 슈팅을 날렸다.

그라운드에 낮게 깔리며 빨랫줄 같은 궤적을 그린 공은 왼쪽 골망을 세차게 흔들었다.

일본 골키퍼 나라자키 세이고가 몸을 날려 봤지만 빠른 템포의 공은 장갑 끝을 스치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의 초반 기세를 꺾는 귀중한 선취골이었다.

박지성이 지난해 6월17일 이란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이후 1년여 만이자 A매치 87경기 만에 사냥한 통산 12호골.
일본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에 눌려 있었던 3천여 붉은악마 응원단 석에서는 `대∼한민국'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반격에 나선 일본은 1분 후 오카자키의 과감한 중거리슛으로 한국의 골문을 노렸다.

그러나 공은 왼쪽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미드필더진의 강한 압박으로 일본을 몰아붙였다.

일본은 중원의 수적 우위를 앞세워 높은 볼 점유율을 보였지만 1점차 리드로 자신감을 얻은 태극전사들의 공세에 힘을 쓰지 못했다.

전반 35분 오른쪽 프리킥 찬스에서 키커로 나선 기성용의 날카로운 인사이드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어갔고 41분 오른쪽 측면에서 왼쪽으로 파고든 염기훈이 날린 왼발 슈팅도 수비수 몸을 맞고 굴절됐다.

허정무 감독은 후반 들어 염기훈과 이근호를 빼고 박주영, 김남일을 투입해 전형을 4-2-3-1로 바꾸는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박주영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서고 김남일이 김정우와 수비형 미드필더 듀오인 더블 볼란테로 호흡을 맞췄다.

한국 대표팀 전력의 핵인 `양박(박지성-박주영) 쌍용(기성용.이청용)'이 그라운드 위에 펼쳐졌다.

허벅지 부상때문에 16일 에콰도르와 경기 때 결장했던 박주영은 상대 수비수를 달고 다니며 문전을 위협했다.

후반 15분에는 미드필드 지역에서 정면이 열리자 왼발 슈팅을 했으나 공중으로 공이 떴다.

오카다 일본 감독은 이렇다 할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하자 혼다와 나카무라 순스케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한국도 후반 30분 임무를 100% 수행한 박지성과 기성용을 빼고 `젊은 피' 이승렬과 김보경을 투입해 공세를 강화했다.

후반 33분 김남일의 재치 있는 오른발 슈팅은 골키퍼 나라자키가 점프해 간신히 쳐냈다.

1-0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는 후반 막판 박주영이 페널티킥 쐐기골을 터뜨리면서 완벽한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박주영은 페널티지역을 돌파하면서 골키퍼 나라자키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직접 키커로 나서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왼쪽 골문을 꿰뚫어 2-0 승리에 마지막 조각을 맞췄다.

박주영이 지난해 9월5일 호주와 평가전 이후 A매치에서 223일 만에 가동한 기분 좋은 득점포였다.

A매치 39경기에서 뽑은 박주영의 통산 14호골. 한국의 간판 골잡이 박주영은 허벅지 부상 우려를 씻어내 남아공 월드컵 활약 기대를 부풀렸다.

태극전사들은 박지성과 박주영의 연속골로 기분 좋은 2-0 승리를 거두고 그라운드를 내려왔고 스탠드를 채웠던 일본 팬들은 실망감을 안은 채 쓸쓸히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사아타마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