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스포츠 경기 사상 최초로 6만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찬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프로축구 FC서울과 성남 일화의 경기에는 무려 6만747명의 팬이 입장해 장관을 이뤘다.

이날은 어린이날에 화창한 날씨, 좋은 대진, 어린이 무료입장 등 여러 가지 호재가 겹치기도 했지만 서울이 이번 시즌부터 치어리더 응원을 도입하며 새로운 응원 문화를 주도하는 것도 6만 관중 돌파의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이 많다.

축구는 전통적으로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 없이 서포터스 등 자발적인 응원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종목이었으나 서울은 이번 시즌부터 과감하게 'V맨'과 'V걸즈'로 불리는 응원단장, 치어리더를 앞세워 팬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서울 김태주 과장은 "처음에는 팬들 사이에서 치어리더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반응이 좋고 서포터스 위주의 응원이 일반 팬들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축구장 새 응원 문화..점차 긍정적인 평가
서울은 새로운 응원 문화 도입을 위해 야구, 농구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을 대거 영입했다.

V걸즈의 팀장을 맡고 있는 치어리더 김지은 씨는 "처음 축구장에 선다고 했을 때 우리도 걱정이 앞섰다.

첫 경기 때는 아예 경기장 밖에서만 공연을 할만큼 축구장에 치어리더는 어색한 조합이었다"면서 "그러나 두 번째 경기부터 경기 시작 30분 전에 경기장 안에서 공연하면서 점차 어울리기 시작했다.

수원과 라이벌 경기가 끝난 뒤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지은 씨는 "축구장에 오시는 일반 팬들은 야구, 농구처럼 기존에 응원 패턴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서포터스 응원을 일반 팬들에게 소개하고 쉬운 노래 위주로 리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은 프로야구 히어로즈 캐릭터를 맡아 '턱돌이'로 유명세를 탄 길윤호 씨도 이번 시즌 축구장으로 불렀다.

구단 마스코트 '씨드'의 캐릭터로 분장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길윤호 씨는 "축구는 경기장도 크고 처음이라 팬들의 성향도 잘 몰랐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야구와 축구 팬들이 서로 썩 친하지 않아 야구에서 온 나로서는 부담도 컸다"고 털어놨다.

"외국 프로축구에서는 마스코트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연구하고 야구장에서는 안 했던 퍼포먼스를 많이 준비했다"는 길윤호 씨는 "그래도 마스코트는 치어리더처럼 축구장에서 처음 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많이 좋아해 주시고 격려도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서울의 장내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 허지욱 씨도 야구와 농구에서 이름난 진행자다.

2005년부터 축구 장내아나운서로 일하는 허지욱 씨는 "올해 많이 달라진 점을 볼 수 있다.

파도타기 응원도 좀처럼 축구장에서는 나오지 않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주 과장은 "파도타기 응원은 올해 수원, 성남과 경기에서 한 번씩 나온 것이 처음"이라며 새로운 응원 문화의 확산에 반색했다.

◇야구-축구-농구 팬의 종목별 특성은
장내 아나운서, 캐릭터, 치어리더의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이들이 본 종목별 팬들의 특성은 어떨까.

대체로 축구 팬들이 가장 열성적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허지욱 씨는 "축구 팬들은 정말 적극적이다.

대형 현수막 같은 것들도 모두 개인 돈을 들여 만드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지은 씨도 "사실 야구나 농구는 경기 내내 서서 보는 팬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축구는 정말 두 시간 가까이 계속 서서 보는 마니아들이 많다.

그것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발도 구르고 손뼉도 치고 소리도 질러가며 응원을 계속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지은 씨는 "그러나 치어리더 입장에서는 축구가 체력 부담이 가장 덜하다.

경기 내내 응원석 앞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응원을 더 많이 유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종목이 축구"라고 말했다.

길윤호 씨 역시 "축구장에서는 전쟁터 같은 느낌이 난다.

팬들이 너무 열성적이라 부담이 될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축구는 서포터스와 일반 팬들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과제로 꼽히기도 했다.

얌전한 '양반 팬'들은 농구에 많다고 했다.

길윤호 씨는 "홈팀이 이기거나 덩크슛이 나와도 그때 잠깐 소리를 지를 뿐 금방 또 조용해진다"고 말했고 김지은 씨도 "농구 팬들은 응원을 유도해야 조금씩 따라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2001년 프로농구 여수 코리아텐더에서 장내 아나운서를 시작한 허지욱 씨는 "그래도 농구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가족적"이라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프로 스포츠의 미래는 밝다
허지욱 씨는 "처음 프로 스포츠에서 일할 때는 20대 초반의 젊은 팬들의 비율이 30% 정도였다면 지금은 50% 이상이 될 정도로 젊은 팬들이 많아졌다.

이번 어린이날에 6만 관중 가운데서도 어린이 팬들이 절반 가까이 될 정도"라고 소개했다.

김지은 씨도 "처음에는 '경기 관전에 방해되는 치어리더'로 생각하던 축구 팬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왜 구단 홈페이지에 치어리더 소개가 없느냐'고 하는 분들도 많아졌다고 들었다"며 "이번에 6만 관중 앞에서는 정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며 즐거워했다.

길윤호 씨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야구와 축구 팬들 사이에 내가 매개체 역할을 해서 두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이 서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