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내셔널GC의 460야드짜리 9번홀.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진 이 홀에서 타이거 우즈의 티샷이 왼쪽으로 떨어졌다. 나무에 가려 그린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우즈는 거침없이 세컨드 샷을 날렸다. 의도적인 훅이 걸린 샷은 오른쪽으로 가다가 마술처럼 왼쪽으로 휘어지더니 그린 위에 올라갔다. 공은 홀 앞에서 멈췄고,우즈는 가볍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아멘 코너'의 마지막 고비인 13번홀(파5 · 510야드).최경주(40)가 그린을 직접 겨냥하며 5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날렸다. 그러나 볼은 워터 해저드 경사지로 날아갔다. 다행히 굴러가던 공은 러프에 멈췄다. 최경주는 세 번째 샷을 홀 앞 2m 지점에 떨어뜨린 뒤 버디로 마무리했다. 최경주는 이를 시작으로 16번홀까지 '4연속 버디 행진'을 벌였다.

8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제74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 첫 라운드에서 한 조를 이룬 '돌아온 골프 황제'와 '탱크'의 기량은 녹록지 않았다. 우즈는 5개월간의 공백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변치 않은 '황제의 샷'을 보여줬고,최경주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당당한 샷을 구사했다.

우즈는 프로 전향 후 열네 번째 출전한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첫날 60타대 스코어(4언더파 68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날 결과만 놓고 보면 '뛰는 우즈' 위에 '나는 탱크'였다. 2003년부터 8회 연속 출전한 최경주는 이날 자신의 마스터스대회 18홀 최소타수(5언더파 67타)를 적어냈다.

◆탱크,거리 늘고 자신감 넘치고

이번 대회는 우즈에게 투어 복귀 첫무대이고,최경주에게는 메이저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즈와 맞붙는 마당이었다. 티잉 그라운드 주변과 페어웨이 양 옆을 꽉 메운 갤러리와 메이저대회라는 중압감을 감안하면 최경주가 더 긴장해야 한다. 그러나 최경주는 덤덤했고,밝은 표정이었다. 황제와의 대결을 앞두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듯했다.

이는 스코어로도 나타났다. 최경주가 2번홀(파5)에서 먼저 버디를 잡았고 우즈는 3번홀에 가서야 첫 버디를 기록했다. 우즈는 5개월 만의 복귀가 부담스러운 듯 신중했다. 평범한 샷을 할 때에도 연습스윙을 서너 번씩 했고 바람이 불면 예외없이 어드레스를 풀곤 했다.

우즈가 미소를 보인 것은 최경주,데이비드 듀발 등 동료들과 악수를 나눌 때와 8번홀(파5)에서 첫 이글을 잡을 때 등 몇 번뿐이었다. 긴장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최경주의 드라이버샷 거리는 300야드에 육박한다. 우즈와의 맞대결에서도 그랬다. 대부분 파4,파5홀 티샷에서 우즈에게 5~10야드 뒤지거나 비슷한 위치에 볼을 떨어뜨렸다. 우즈가 입을 벌리고 "거리가 많이 늘었다"며 놀랄 정도였다. 최경주는 "앞바람이 불 때 내가 더 멀리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뒷바람일 때는 우즈의 볼이 더 나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최경주는 함께 플레이한 매트 쿠차(32 · 미국)보다도 멀리 보냈다.

거리뿐 아니다. 쇼트게임,퍼트,위기 탈출 능력도 황제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7번홀에서는 볼이 벙커에 빠졌으나 파세이브를 했다. 그린을 놓친 3,8번홀에서도 파로 막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10번홀에서는 티샷이 나무에 맞고 떨어지고,17번홀에서는 티샷이 나무 아래 멈춰 그린을 바로 공략할 수 없었는 데도 파를 잡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최경주는 "우즈가 '감사합니다'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은 물론 한국식 욕도 아는데 그 버릇을 안 고쳤다"며 우즈가 경기 중 농담 삼아 한국식 욕설을 구사했음을 시사했다.

◆133일 만의 버디와 이글 두 방 '우즈 쇼'

우즈는 지난해 11월 호주 대회에 출전한 뒤 성추문이 터지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공백기를 가졌다. 133일 만의 첫 버디는 3번홀에서 나왔다. 길이 350야드로 파4홀 가운데 가장 짧은 이 홀에서 우즈는 티샷을 300야드가량 날려보낸 뒤 어프로치샷을 홀 옆 1.5m 지점에 떨어뜨려 첫 버디를 잡았다.

우즈는 잔잔한 미소,손으로 모자를 잡는 동작으로 답례했을 뿐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세리머니'를 한 곳은 8번홀(파5).2온 후 약 2.5m 거리의 이글퍼트가 홀로 사라지자 오른 주먹을 쥐어보였다.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자제하는 듯했다.

우즈는 파5인 8,13,15번홀에서 모두 2온에 성공한 뒤 3m 안팎의 이글 기회를 맞았다. 15번홀에서 두 번째 이글을 낚으며 갤러리들의 환호를 받았다. 첫날 경기 내용은 이글 2개,버디와 보기가 3개씩이었다. 보기가 다소 많은 게 흠이었다.

우즈는 긴장을 풀지 못한 탓인지 실수가 적지 않았다. 2번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오른쪽 러프에 멈췄다. 홀까지는 약 15m.볼을 띄워 친다는 것이 홀을 8m나 지나버렸고,파에 만족해야 했다. 10번홀(파4)에서 어프로치샷이 그린에 떨어진 뒤 경사를 타고 그린 밖으로 굴러나왔다. 볼에서 홀까지는 약 20m.그 짧은 칩샷이 홀을 4m나 지나쳤고,결국 보기로 홀아웃했다.

샷이 안 될 때에도 화를 내거나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던 우즈는 11번홀(파4)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이 홀 티잉 그라운드는 갤러리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우즈는 티샷이 오른편 숲쪽으로 날아가자 드라이버로 티잉 그라운드를 치며 이날 처음 드러내놓고 화를 냈다. 예전같으면 놓치지 않았을 2m 안팎의 퍼트도 몇 차례 실패했다. 우즈는 경기를 마친 뒤 "여느 대회 1라운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많은 팬이 성원해줘 힘이 났다"고 말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