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공백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지는 경기였다.

박지성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31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09/1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에 1-2 역전패 당했다.

전반 2분 만에 웨인 루니가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앞서나갔던 맨유지만, 후반 뮌헨에 연거푸 2골을 허용하며 1차전을 내줘 다음달 8일 있을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4강에 진출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난 28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2009/1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 경기에 결장했던 박지성은 이날 AC 밀란과 리버풀 전에서 보여줬던 중앙이 아닌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뮌헨의 아르옌 로벤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수비적인 움직임에 한결 부담을 던 박지성은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유의 활동량을 바탕으로 뮌헨의 공격 시발점인 필립 람을 견제했고 이는 곧 람의 오버 래핑을 최대한 자제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전반 내내 오른쪽에서 람의 오버 래핑이 줄어들자 하밋 알틴톱 역시 패트리스 에브라를 뚫기 어려워해 뮌헨의 공격은 주로 프랑크 리베리의 왼쪽에 의존해야 했다.

단조롭지만. 빠르고 날카로운 뮌헨의 공격에 맞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기존 챔피언스리그에서 했듯 안정적인 경기 운용을 선보였다.

원정 골을 기록하며 1-0으로 앞서 있어 무리할 것이 없던 맨유는 전체적으로 수비와 중원을 밑으로 끌어내려 수비적으로 나왔다. 상대 중앙 수비수인 다니엘 반 바이텐과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기동력이 느리단 점을 이용, 공격은 철저하게 루니와 나니만을 활용했다.

맨유가 전체적으로 중원을 내주며 뮌헨에 밀리는 형세를 보였기에 박지성의 공격적 움직임은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수비에서의 활약은 눈부셨다. 돌파와 크로스가 일품인 람을 후방에서 움직이게 한 박지성의 움직임은 눈에 띄진 않았지만, 맨유의 꼭 필요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퍼거슨 감독은 큰 실수를 범했다. 박지성과 마이클 캐릭을 빼고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투입하는 판단을 내린 것. 당시 맨유가 공격보다 뮌헨의 파상공세를 막기에 급급했던 상황이라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박지성과 마이클 캐릭을 빼고 공격적으로 나온 판단은 옳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의 이 선택은 흡사 앞서는 팀이 아닌 만회골을 노리는 팀으로 비칠 정도로 공격적이었던 터라 챔피언스리그에선 무조건 안정적인 운영이 우선 순위였던 기존 맨유의 모습과 상반돼 더욱 놀라웠다.

가뜩이나 파상 공세에 시달리던 맨유는 묵묵히 수비에서 맡은 임무를 다하던 두 선수가 나가자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동안 박지성으로 인해 조용하던 람이 본격적으로 오른쪽 측면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크로스 폭격'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람은 오른쪽에서 활발한 공격을 뽐내기 시작했고 조용하던 알틴톱 역시 람이 살자 덩달아 살아나며 에브라 혼자선 막기 버거워져 결국 맨유의 왼쪽은 뮌헨의 주 공격 루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인 박지성의 교체가 수비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맨유의 역전패를 불렀다는 것은 무리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박지성이 있을 땐 조용하던 뮌헨의 오른쪽이 나가자마자 무섭게 변했다는 점이고 이로 말미암아 뮌헨의 공격 루트는 다양해졌다.

결국, 좌우 측면 모두 뚫리기 시작한 맨유의 분위기는 퍼거슨 감독의 생각과 달리 더욱 수세적으로 몰리며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맨유와 뮌헨의 8강 1차전에서 박지성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박지성이 뛴 70분이 아닌 교체 돼 나가 피치에 없던 후반 막판 20분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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