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린 기간 우리는 즐거웠다. 올림픽의 성화처럼 불타오르던 선수들의 몸과 정신,관중의 응원도 성화와 함께 이제 가라앉았다. 잔치가 끝나면 과제가 남는다. 과제에는 해결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는 문화라는 점에서 단순한 접근을 거부한다. 문화는 전환된 삶의 양식이기에,문제가 있을 때 단순한 대응책보다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포츠와 문화의 본질이 만나고 어긋나는 경우를 유럽연합을 통해 발견하고 시금석으로 삼을 만하다.

스포츠는 문화 중에서도 오래된 문화다. 고대 올림픽이 그것을 웅변한다. 고대 올림픽은 종교 행사였다. 즉 인간 세상과 신의 영역을 잇는 미토스(mythos)의 언어였다. 인간이 육체라는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고 벗어나려는 힘을 보여주기,그것은 인간 이성의 영역인 아고라 광장과 대립한다. 아고라,곧 민주주의의 근원은 개인으로서의 시민이고,그 개인의 분명한 경계는 육체이다.

개인으로서의 육체가 민주주의 의식과 만날 때 권리와 의무를 말하게 되고 욕망과 그로 인한 불안에 대해 근심한다. 스포츠는 바로 그러한 욕망의 해소,불안의 해결 장소인 셈이다.

유럽연합은 정신적 유산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를 지목한다. 그 유산은 일단 민주주의이지만,민주주의는 스포츠와 같이 와야 한다. 이성의 안과 밖,말과 행동,정치와 스포츠는 높은 차원에서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스포츠 정책은 이러한 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 관련 백서에서 유럽연합은 스포츠를 좋은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 세계의 제대로 된 부활이다. 정치적 불안을 스포츠에서 일정 부분 해결하면서 통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숨은 아이디어다.

통합은 주지하다시피 유럽연합의 핵심이다. 최근 유럽연합이 문화를 사회 통합의 견인차로 다시 보고 그것의 정치 · 경제적 파급 효과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을 생각해보면,문화의 일환으로서 스포츠에 거는 유럽연합의 기대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스포츠 분야에서 FIFA와 맞설 수밖에 없다. FIFA는 국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벌이는 스포츠 행사의 주축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간의 경계를 줄여 통합을 이루어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이 양자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유럽 축구 클럽의 쿼터제 문제다.

FIFA는 국가간 선수 이동을 제한하는 선수 구성의 쿼터제(외국인 선수 수에 대한 제한)를 지지하는 반면 유럽연합은 선수를 노동자의 하나로 보아 노동자의 이동 자유라는 원칙 속에서 접근,쿼터제를 폐지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유럽연합은 스포츠가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논리에 맡겨 스포츠 산업의 틀 속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것의 일차적 결과는 경제적 이득이겠지만 스포츠 문화를 머니게임(천문학적 이적료와 연봉에 따른 스타 선수들의 이적에 좌우되는 경기 승패)으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유럽연합 내의 스포츠클럽 수는 70만개 정도이고,지도자 수만 200만명에 달한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으로 나눌 수 있는,그래서 문화의 기본 구분과 일치하는 스포츠가 일면 돈잔치가 됐을지언정,그것의 문화로서의 위상을 유지 · 확대하는 길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스포츠 역시 우리 삶과 유리된 채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엘리트 선수들의 기록 경신이나 승부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스포츠를 생활문화로 좀더 자리매김하는 데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고 스포츠를 삶의 일부로 대하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이다.

/임재호 <연세·SERI EU센터 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