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이상화.데이비스, 쇼트트랙 출신

`한국의 쇼트트랙 1세대는 대부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이었지만 이제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전향해 성공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에서 금메달 쾌거를 이룬 이승훈(22.한국체대)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승훈은 지난 14일 열린 5,000m에서는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4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나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 지 1년도 되지 않아 얻은 대단한 성적표다.

특히 이승훈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에 빛나는 안현수(성남시청)와 현재 대표팀 `맏형'인 이호석(고양시청)의 벽을 넘지 못하고 10년 넘게 해왔던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접고 새로운 도전에서 성공시대를 열었기에 의미가 더욱 크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꿔 성공한 사례는 이승훈 말고도 `단거리 빙속 여왕'으로 떠오른 이상화(21.한국체대)와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28.미국)도 있다.

이상화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쇼트트랙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5학년 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두각을 드러낸 사례다.

레이스 중 선수 간 몸싸움이 싫어 기록으로 승부를 가리는 스피드로 옮긴 이상화는 이후 빠른 성장세를 보인 끝에 여자 단거리 부문 최고의 스프린터로 성장했다.

또 주니어 시절부터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병행했던 데이비스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흑인 최초로 미국 쇼트트랙 대표로 발탁됐으나 절친한 친구였던 아폴로 안톤 오노가 대표 선발 과정에서 밀어줬다는 의혹에 휘말려 끝내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데이비스는 이후 스피드스케이팅에 전념해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1,000m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사냥했고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1,000m에서 대회 2연패 위업을 이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1세대들이 스피드 선수 출신이라는 걸 보면 크게 달라진 풍경이다.

쇼트트랙이 동계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던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대회 때 1,500m와 3,000m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땄던 김기훈(현재 남자대표팀 코치)과 이준호는 모두 스피드 선수였다.

김기훈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 2관왕(1,000m, 5,000m 계주)에 올랐고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선 1,0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이준호도 알베르빌 대회 계주 금메달과 1,000m 동메달로 한국 쇼트트랙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이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한국은 `쇼트트랙 강국'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국내 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상황이 됐고 이 때문에 쇼트트랙 선수들의 스피드 종목 전향은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됐다.

쇼트트랙에서 기본기를 충실히 익혀 활주 능력과 코너링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스피드 선수로서도 빨리 적응할 수 있고 특히 순발력과 곡선 주로 스피드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1,500m 은메달과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최은경은 한국체대 졸업 후 2년 동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뛰었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