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5기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도전만으로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이자 맏형 이규혁(32.서울시청)이 결국 16년 동안 이어진 올림픽 메달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규혁은 18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치러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9초92의 기록으로 9위에 머물렀다.

이규혁은 앞서 16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500m에서도 1, 2차 레이스 합계 70초48로 15위에 그쳤다.

남은 1,500m와 10,000m, 팀추월 등 종목에는 출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규혁은 결국 '노메달'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스스로도 "마지막 도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이도 많기 때문에 사실상 한 개의 메달도 목에 걸지 않은 채 올림픽 무대를 떠나게 된 셈이다.

올림픽 무대만 5차례 밟은 긴 도전의 세월이었다.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상심도 했고, 은퇴 결심도 여러번 했지만 동계올림픽 성적의 아쉬움과 책임감에 도전을 계속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김윤만, 제갈성렬 등 쟁쟁한 선수와 함께 중학생 시절 첫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이규혁은 500m에서 38초13의 기록으로 36위에 그쳤다.

이후 1998년 나가노 대회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매번 올림픽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금메달 후보라는 기대 속에 경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늘 아쉬웠다.

특히 2006년 토리도 대회 때는 주종목으로 내세웠던 1,000m에서 0.05초 차로 동메달을 놓치면서 또 한번 올림픽 메달의 기회를 날렸다.

이규혁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아버지 이익환 씨와 피겨스케이팅 대표 코치 출신 어머니 이인숙씨의 장남이다.

동생 이규현도 피겨스케이팅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빙상 명가' 출신이다.

13살이었던 1991년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규혁은 2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 무대를 누비면서 한국 빙상의 상징으로 활약해왔다.

이제 서른을 훌쩍 넘긴 최고참이지만 여전히 아시아기록 2개(1,000m, 1,500m)와 한국기록 2개(1,000m, 스프린트 콤비네이션)를 보유하고 있는 간판선수다.

막상 올림픽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에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도전을 마치게 됐지만, 오랜 기간 빙판을 지킨 이규혁의 성실함을 보며 이강석(25.의정부시청), 모태범(21), 이상화(21.이상 한국체대) 등 실력있는 후배들이 자라났다.

18일 1,000m가 끝난 뒤 은메달을 따낸 모태범을 찾아가 축하 인사를 건넨 이규혁의 모습은 후배들을 길러낸 '큰형' 그대로였다.

(밴쿠버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