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놀라운 승리"(월스트리트저널),"한국인들이 타원형 경기장을 지배하고 있다"(AP)….

동갑내기 모태범(21 · 이상 한국체대)과 이상화(사진)가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빙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녀 500m를 '싹쓸이'하자 외신들은 이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메달 소식에 환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한국 스프린트의 수직 상승 비결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멀리 보는 투자와 체계적인 훈련,쇼트트랙의 성공DNA를 공유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일을 낼 만해서 냈다는 얘기다.

◆지옥훈련과 통 큰 투자

대한빙상연맹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이탈리아)이 끝나자마자 '2010 밴쿠버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메달 분포를 쇼트트랙 일변도에서 다른 종목으로 다변화하고,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발전 계획을 수립한 것.이상화 등 여자 선수까지 한여름 뙤약볕에서 폐타이어를 끄는 지옥훈련에 참가했고,지난해 7월 캘거리에 이은 밴쿠버 전지훈련으로 올림픽 1년 전부터 현지 경기장 적응에 들어갔다. 유독 빙질이 고르지 않은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경기장에 선수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지옥훈련에서 길러진 체력 덕분이란 분석이다.

속도를 다투는 스피드스케이팅은 과학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체육과학연구원은 몇 년 전부터 선수들의 채혈을 통해 몸 상태를 체크하는 '핑거팁(fingertip) 테스트''개인별 체력 및 반응 시간 평가' 등을 통해 더욱 체계적인 훈련 계획을 짰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40)은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빙상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삼성그룹은 지난 14년 동안 100억원 이상을 빙상연맹에 지원했다. 삼성의 지원 덕분에 연맹은 일류 코치를 영입하고 해외 전지훈련을 자주 다니게 됐다는 게 빙상계의 지적이다.

◆쇼트트랙과 전략적 제휴

한국은 명실공히 쇼트트랙 강국이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쇼트트랙과 손(?)을 잡았다. 코너를 돌 때 감속을 줄일 수 있는 탄력 밴드 훈련을 적극 도입하는 등 쇼트트랙 훈련 방법을 도입했다. 불과 1년 전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22 · 한국체대)이 체격의 열세를 만회하고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곡선 주로에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속도를 낸 것도 쇼트트랙에서 배운 코너링 기술 덕택이다. 또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인 오세종과 김종민씨가 전지훈련 때부터 선수들과 함께하며 빙질에 맞게 날을 갈아 최상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들고 있다.

이승훈,모태범,이상화 등 갓 스무살을 넘은 신세대의 주눅들지 않는 도전정신도 한국 스프린트 도약의 또 다른 배경이다. 모태범은 세계 기록 보유자인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과 2차 레이스에서,이상화는 세계 단거리 최강자 예니 볼프(독일)와 두 차례 모두 맞붙어 당당하게 승리했다. 상대적으로 기대가 크지 않아 부담감이 적었던 것도 젊은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상화는 "스피드스케이팅이 피겨스케이팅,쇼트트랙에 밀려 서러웠다"고 말했고,모태범도 "기자들이 거의 질문을 안 해 서러웠지만 오히려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이 더 자극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