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 자가 버젓이 있는데 '무명'이라고 부르거나 나름대로 잘 치고 있는데 '깜짝 선두'라고 표현하면 열받죠.3언더파를 쳤는데도 '뒷심 부족'이래요. 성공적인 아마추어 경력을 갖고 미국 무대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어요. 첫승을 올리지 못했지만 우승하고 무너지는 것보다 꾸준히 상위권에서 선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미국LPGA투어 4년차인 유선영(23)이 18일 기자와 만나 작심한듯 쏟아낸 말들이다. 유선영은 올 시즌을 마치고 현재 서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잘하는 한국 선수들이 많아 미LPGA투어 우승이 쉬운 것처럼 비쳐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무명,깜짝 선두 등의 표현이 나올 때면 친척들이 더 열 받아 전화를 걸어온다"고 말했다.

사실 유선영만큼 아마추어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도 많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처음 잡은 유선영은 중학교 3학 때인 2001년 한국주니어골프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2년과 2004년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04년엔 미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이름을 올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미LPGA 퓨처스(2부)투어에 뛰어들어 우승하는 등 상금랭킹 '톱5'에 들어 그 이듬해 정규투어로 옮겨 우승컵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최종 목표는 미LPGA투어 진출이었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바로 미국 무대에 뛰어들었다"며 "지금도 그 결정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 시즌 성적은 아칸소챔피언십 공동 2위를 비롯해 CVS/파머시챌린지(공동 3위) 등 '톱10'에 네 차례 올랐다. 상금랭킹 23위(61만달러)로 상위권이다. 투어생활 3년 만인 지난해 처음 살림살이가 흑자로 돌아섰단다. 하지만 전담 캐디비용(4000만~5000만원)과 숙식 및 이동경비(5000만원) 등 기본 경비가 많이 들어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는 게 다급한 상황이다. "타이틀 스폰서를 따질 입장이 아니잖아요. 제가 맞춰가야죠.정직하고 꾸밈이 없는 성격이에요. 때로는 새침데기같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편하다고들 해요. "

아칸소챔피언십에서는 신지애에게 연장전에서 패하는 등 우승컵은 그에게 잡힐듯 잡히지 않았다. "당연히 우승하고 싶죠.내년 시즌 목표도 우승입니다. 잘하는 후배들이 하도 많으니까 무덤덤해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후배들은 더 젊고 기회도 더 많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기도 해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뭔가를 이뤄내야죠."

가장 기쁠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시즌이 끝났을 때"라고 한다. "한국에 갈 수 있고 집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기뻐요. 한국에는 1년에 서너 번밖에 오지 못합니다. 12월이 그나마 푹 쉴 수 있는 시기죠."

미국투어 생활은 대회가 끝나자마자 골프클럽(30㎏)과 큰 트렁크,보조가방을 챙기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란다. 투어생활을 하다보니 친구도 하나둘 줄어든다.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면 '내가 아직 덜 힘들고 덜 피곤하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도망갈까봐 미니 홈피에 글도 남기는 등 나름대로 공을 들이지요. "

그가 가장 본받고 싶은 선수는 줄리 잉스터(49 · 미국)다. "결혼해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면서도 힘든 투어생활을 하는 걸 보면 저절로 존경스러워요. 매너가 좋은데다 거리도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아요. 저도 잉스터처럼 존경받으며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