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기록들이 새롭게 씌어지고 있다. 선수들의 체격 · 체력이 좋아진 데다 첨단 장비,과학적인 방법론까지 곁들여져 스포츠 역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록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스포츠는 과학'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과학은 스포츠 발전과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불가결한 요소로 등장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각종 스포츠에 녹아 있는 '과학의 힘'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허미정(19 · 코오롱)은 최근까지도 골퍼로서 '고질병'이 있었다. 백스윙과 다운스윙의 궤도가 일정한 면(플레인)을 형성하지 못하고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8자 스윙'으로 유명한 남자골퍼 짐 퓨릭(미국)처럼 백스윙 때는 클럽이 목표라인 바깥으로 올라가고 다운스윙 때는 목표라인 안으로 들어오는 비교과서적 스윙이었다. 매번 스윙 궤도가 달랐기 때문에 일관된 샷이 나오지 못했고,나아가 성적도 들쭉날쭉했다.

그는 프로골퍼로서는 '도박'이나 다름없는 스윙 교정에 착수했다. 충남 천안 우정힐스CC 내에 있는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아카데미'(DLGA) 코치진의 도움을 받아 전면적인 스윙 개조에 나선 것.물론 제 스윙을 갑자기 바꾸려 하니 처음에는 생소했다. 그러나 재탄생에 따른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감수했다. 목표라인 뒤쪽 오른편에는 빈 상자를 쌓아두고,앞에는 스펀지를 단 스윙교정 폴(막대)을 놓은 채 스윙을 연마했다. 스윙이 인위적으로 쌓아둔 벽 안에서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궤도가 일정한 '슬롯(slot) 스윙'을 추구한 것.그 덕분이었을까. 허미정은 지난 8월 미LPGA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또 다른 프로골퍼 임지나(22 · 코오롱)는 클럽을 잡을 때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지난 9월 LG전자여자오픈 때 시험 삼아 기존 그립의 세기보다 15%가량 힘을 빼 드라이버샷을 해보았다. 그 결과 드라이버샷 거리가 종전보다 10야드는 더 나갔고 그는 2년 만에 우승컵에 포옹했다.

두 선수의 우승은 스윙분석 프로그램인 'V1',신체 주요 부위의 움직임을 전달해주는 조끼인 'K-베스트'(vest),퍼트의 템포와 궤도를 분석하는 '샘퍼트 랩'(Sam-putt lab)' 등 첨단 장비들을 동원한 결과다.

골프 선수들이 첨단 과학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골프에 적당한 근육을 늘리고 체력을 키우며,대회 현장에서 클럽 피팅에 나선다. 끊임없는 연습에 첨단 장비와 과학을 덧칠하고 있는 셈이다.

골프 선수들에게 클리닉센터를 찾는 건 일상이 됐다. 선수들은 경기도 분당과 용인 주변 클리닉센터에서 하루 2시간 이상 체력을 담금질한다. '보디 피팅센터'로 불리는 JDI스포츠클리닉 분당센터는 서희경 이정은 최혜용 김하늘 등 KLPGA투어 소속 30여명의 선수와 최나연 지은희 배경은 등 해외파가 단골이다. 선수들은 근력 순발력 유연성 민첩성 심폐지구력 등 8가지 테스트를 거쳐 취약한 부분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정기적으로 훈련한다. 이곳의 전담 코치들은 대회 전에 직접 스트레칭과 테이핑,얼음찜질 등 현장서비스도 해준다. 조종현 대표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체력과 더불어 실력 향상을 경험해 정기적으로 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클럽 피팅센터도 실력 증대의 첨병이다. 골프 대회장마다 각종 장비를 갖추고 클럽을 피팅해주는 '투어밴' 앞은 북새통이다. 선수별로 샤프트 길이와 강도,클럽 무게,헤드 밸런스 등에 맞게 클럽을 최적으로 맞춰준다. 대회 전 샷 구질이 달라진 선수에게 피팅센터가 임시 구급차 역할을 톡톡히 한다. 투어스테이지 캘러웨이 타이틀리스트 테일러메이드 등은 탄도,스윙 궤도,샤프트 길이,헤드 스피드 등을 체크한 뒤 소비자들이 자신의 몸에 맞는 클럽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피팅센터도 운영 중이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