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일본에서 2년 연속 부진했던 이승엽(33.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승엽은 17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귀국 인터뷰를 갖고 "나에게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의미있다"며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엽은 지난해 극심한 타격 부진 탓에 타율 0.248에 홈런 8개와 타점 27개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절치부심하며 이번 시즌을 맞았지만 7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9에 그쳤다.

홈런과 타점은 각각 16개와 36개에 불과했다.

이승엽은 이날 곧바로 대구로 내려가 가족, 친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KIA 최희섭과 함께 산을 오르며 훈련할 예정이다.

이하 일문일답.
--귀국 소감은.
▲9개월 반 만에 귀국했다.

올해는 좋았던 일도 있었고 속상한 일도 많았다.

이제는 시즌이 끝난 이상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고 싶다.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열심히 해도 안되면 인정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무척 힘든 시즌을 보냈다.

▲2군 생활도 오래했고 30타석 이상 안타를 못 치기도 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버하기도 했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은 셈이다.

8번 타자, 대주자, 대수비까지 해 봤다.

그런 경험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내가 좋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부진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출장했다.

인정한다.

내년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벼랑 끝에 섰다는 심정으로 다시 해 볼 것이다.

--일본 활동에서 위기감을 느꼈나.

▲이미 지금 위기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시즌 초반 자리를 잡지 못하면 1년 동안 계속 자리를 못 잡을 수도 있다.

이번 겨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의미있다.

내가 이겨낼 수밖에 없다.

--아쉬웠던 부분은.
▲너무 많이 아쉽다.

나의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해내지 못했다.

기술, 정신력, 연습 중에서 하나는 부족했다.

성적이 이를 말해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올해가 끝나면 다른 길을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요미우리와 계약이 내년이 끝이다.

지난 2년간 부진했고 내년 시즌에도 부진하면 잘릴 수밖에 없다.

용병 신분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3~4년 전보다는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생각은 많이 약해졌다.

--다른 구단이나 국내 복귀까지 염두에 두고 있나.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빠르다.

아직 1년이 더 남아 있다.

그 결과에 따라야할 것이다.

--겨울 훈련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가.

▲예전에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다지고 나서 기술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2년 동안 성적이 부진했던 만큼 올해는 기술과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할 것이다.

훨씬 빨리 기술 훈련에 들어가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보강할 것이다.

▲이번 시즌 동안 힘은 있었기 때문에 강하게 치려다가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간결하게 스윙을 해야 했는데 이중 동작처럼 휘둘렀다.

자연스럽게 방망이가 나와야 하는데 뒤에서 걸렸다.

그래서 타이밍이 맞아도 파울과 스윙이 많았다.

공이 배트 뒤에서 맞았다.

그런 미스샷 10~20개만 줄여도 타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가볍게 스윙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내 타격자세를 비디오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시즌 막판 이런 문제점을 찾았다.

김한수, 김기태 코치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이 점이 올해 부진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체중을 줄였는데.
▲20대와 30대는 몸이 다르다.

나잇살이 붙는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몸이 둔해진다.

예전보다 수비와 배팅에서 더 빨리 움직이고 순발력을 보여야 한다.

파워는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스피드는 나도 모르게 떨졌다고 생각한다.

원인은 연습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성적이 부진했던 것에는 그런 면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최희섭과 함께 훈련하게 된 계기는.
▲희섭이 산을 타면서 몸과 마음이 안정됐다고 했다.

나도 조금씩 산을 타기는 했지만 재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마음과 몸이 지친 상태니 산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새 마음으로 시작할 것이다.

훈련 내용과 장소는 희섭에게 맡길 것이다.

일단 오늘 대구를 다녀와서 자세한 훈련 계획을 생각할 것이다.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김태균과 연락했나.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연락은 못했다.

타격 기술에서는 내가 조언할 게 없고 할 이유도 없다.

생활면에서는 환경이 갑자기 바뀌니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롯데는 내가 2년 동안 뛴 곳이니 그쪽에서도 한국 선수의 습성을 잘 알 것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것이다.

--두 선수가 일본에서 함께 뛰며 시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우리 팀 선수들이 신문을 보고 나에게 축하했다.

그런데 태균이 4번 타자를 치는데 내가 2군에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최악의 경우를 피해야 한다.

내가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가족이 힘이 됐나.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아들이 '요미우리는 야구를 하고 있는데 아빠는 왜 집에 있냐'고 묻더라. 마음이 마팠다.

가장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가족에게 미안했다.

아버지께도 도쿄돔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