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진출 15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섰던 박찬호(36.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색다른 경험에 만족하면서도 챔피언 반지를 놓친 아쉬움은 잊지 못했다.

10일 귀국해 강남구 역삼동 박찬호 피트니스 센터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한 박찬호는 "뜻깊은 시즌을 보냈기에 귀국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며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나섰다.

딸만 둘인 박찬호는 아들만 둘인 한국인 두 번째 메이저리그 타자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즌 중 종종 통화했다면서 "추신수에게 아들은 도대체 어떻게 낳는 거냐고 물었더니 술을 먹으라는 답을 들었다"면서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마무리 투수 바로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맹활약한 박찬호는 "우리 팀 마무리였던 브래드 리지의 비통한 모습을 보면서 애리조나에서 마무리로 뛰었던 김병현이 떠올랐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후배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월드시리즈에서 뛴 소감은.

▲솔직하게 굉장히 많이 아쉽다.

뉴욕 양키스에 패하고 나서 며칠간 잠이 안 왔다.

1승3패에서 2승3패로 만들었을 때는 '(우승의) 기회가 왔구나,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리즈를 시작할 때보다 더 기대했지만 막상 패하니 무척 아쉬웠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키스 전력이 아주 좋았다.

선수들이 몸값에 걸맞은 월드시리즈에서 다 펼친 것 같다.

역시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6경기 하면서 4경기에 등판했는데 팀에서 나를 필요한 선수로 인정했기에 그랬던 것으로 본다.

내 역할을 했고 굉장히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투구에는 만족한다.

--올해 선발로 뛰다 중간 계투로 내려갔는데.

▲중간 계투는 굉장히 힘들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는 중간 계투로 점수 차가 많은 상황에서 등판해 부담없이 던졌다면 올해는 이긴 경기에 많이 나갔다.

이기는 경기, 1점차 상황 부담을 가질만한 경우가 많았다.

5~6회가 되면 긴장하게 됐고 이미 더그아웃에서 전화가 오기 전에 몸도 먼저 풀어놨다.

그러면서 중간 계투라는 보직에 능숙해졌다.

내가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매력 있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아직도 한 게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선발에 매력을 느낀다.

--계약은 어떻게 돼가나.

▲아직 잘 모르겠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구단이 나와 재계약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에이전트를 통해 들었다.

계약을 서둘러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여유가 있다.

월드시리즈까지 가서 등판 기회가 많았기에 필리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연락 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필리스에서 1년간 뛴 소감은.

▲큰 매력과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진짜 야구를 사랑하는가를 자문하게 됐고 팬들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원래 필리스 팬들이 극성스러워 별로 안 좋아했지만 홈팀 선수가 되고 나니 대우가 극과 극이었다.

어디서든 팬들이 나를 알아보고 한국 사람들이 해주는 것처럼 정겹게 해줬다.

1-2이닝을 잘 막는다는 뜻으로 '쵸퍼(chopper)'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 많이 느꼈고 필리스에는 기혼 선수들이 많아 잘 뭉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필리스에서 더 뛴다면 이번에는 모험이 아닌 편안한 투구를 할 것 같다.

만약 다른 팀과 협상을 한다면 이런 팬과 선수단의 분위기가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선발로 부진했던 이유는.

▲스프링캠프 때 잘해서 5선발을 따놓고선 마음이 바뀐 것 같다.

스스로 이 자리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또 왼쪽 허벅지 근육통 탓에 구종이 많이 달라졌던 것도 원인이다.

--계약의 우선순위를 둔다면.

▲내년에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내가 편안한 곳, 아는 사람들과 아는 장소도 많은 곳이라면 좋겠다.

기왕이면 선발로 재기할 수 있는 곳, 기왕이면 월드시리즈를 갈 수 있는 팀이라면 더 좋겠다.

뉴욕 양키스가 될 수도 있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될 수도 있다.

--마무리를 하고 싶은 꿈은 있나.

▲그리 간절하지 않았지만 시즌 중 내게 기회가 올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긴 했다.

굉장히 준비를 많이 했다.

특히 심리 전문가인 하비 도프먼 박사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셋업맨도 마무리와 똑같다고 생각해 점수 안 주려 했고 마무리 투수인 리지와 얘기도 많이 나눴다.

항상 홈런 등을 맞고 세이브 찬스를 날릴 경우를 머릿속에 떠올렸고 '괜찮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오른쪽 허벅지 근육통 부상에서 복귀한 후 다저스와 첫 경기, 월드시리즈 4경기다.

모두 긴장됐던 게임이었고 특히 월드시리즈에서는 다 강타자와 상대했다.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긴장을 하면서 김병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리지의 침통한 모습 보고 마무리 투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강속구를 뿌린 비결은.

▲부상에서 완쾌했고 근력도 강해졌다.

5년 전부터 이창호 트레이너와 계속 훈련을 하면서 체계적인 훈련법을 터득한 게 주효했다.

와이프의 내조와 두 딸이 주는 기쁨과 행복감도 큰 몫을 했다.

--추신수와 자주 통화했나.

▲나는 어떻게 하면 아들 낳을 수 있는지 추신수에게 물었고 추신수는 내 공이 좋다고 얘기하는 식으로 종종 통화했다.

클리블랜드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투수 클리프 리가 있어 추신수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다.

국내에서 만날 추신수를 예정이다.

--롤모델로 삼은 투수가 있다면.

▲여러 선수의 조언을 듣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려 노력한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선수, 팬들과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투수 제이미 모이어 같은 이는 야구도 잘하고 사회활동도 많이 한다.

지금 애가 5명이나 있는데 2명을 아시아에서 더 입양해 키우겠다고 한다.

47살이 되도록 야구를 할 수 있는 모이어의 철학 등을 많이 배운다.

놀란 라이언, 샌디 쿠펙스 등 은퇴하고 나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을 따르고 싶다.

--한국시리즈를 봤나.

▲보고 얘기도 들었다.

김성근 SK 감독님의 열정을 보고 '역시'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SK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KIA가 우승하면서 국내 야구 발전에 또 다른 이바지를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에서 활약했던 서재응과 최희섭이 KIA의 우승을 이끌어 기쁘게 생각한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