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였다. 주연배우는 '2년차 젊은 호랑이' 나지완과 '조련사' 조범현 KIA 감독이었다. 한 해 농사 계획을 조 감독이 세웠다면 가을 걷이는 나지완이 해냈다.

나지완은 지난 2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5-5 동점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2-2에서 나지완의 배트가 시원하게 궤적을 그렸다. 뭔가 맞았다고 직감한 순간 타구는 이미 왼쪽 펜스를 넘어가고 있었다. 잠실벌에서는 축포가 터졌고 나지완은 홈을 밟은 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역전 끝내기 홈런을 때린 나지완은 경기 직후 기자단의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 61표 중 41표를 얻어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나지완은 그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날도 3번 타자로 나서면서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첫 타석에서 3루 땅볼,두 번째 타석에서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난 나지완은 6회 세 번째 타석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점수 차가 1-5로 뒤쳐진 상황에서 중월 투런홈런을 터트려 분위기를 확 바꿨다. 다시 맞이한 9회 말 공격에서 나지완은 역전홈런 한 방으로 12년을 기다려온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KIA의 우승에는 조 감독의 '맏형 리더십'도 한몫했다. 그는 우선 패배 의식에 사로 잡혀 있던 선수들에게 열정과 믿음의 씨앗을 심어줬다. 부드러운 신뢰와 빈틈 없는 협력 시스템,눈앞의 성적보다 내일을 내다보며 한 발씩 나아간 우직함.이것이 바로 조범현 리더십의 요체였다.

조 감독은 '조갈량''작두 범현'이라는 별명처럼 통계를 활용한 야구와 특유의 용병술로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통계가 전부는 아니다. 올해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김상현 기용과 선발 투수 운용은 '믿음의 야구'를 보여준 대목이다. 올초 LG에서 이적한 김상현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기회를 줬고,그는 홈런왕과 타점왕으로 화답했다. 시즌 초반 일부 투수의 부진 속에서도 유지한 6선발 시스템은 정규리그 1위의 일등공신이 됐다.

조 감독은 경기 직후 마이크를 잡고 상대팀인 SK 응원석을 향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한 SK 선수단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경기가 끝나면 모두가 승자이자 동료라는 스포츠 정신을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