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5차전은 두산이 1-0으로 앞서던 2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포스트시즌 사상 두 번째 노게임이 선언됐다.

SK는 14일 재개된 경기에서 14-3으로 대승을 거두고 기적같은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13일 폭우가 SK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초반에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되면서 피로가 쌓였던 SK 불펜 투수들은 하루 휴식을 거저 얻은 셈이 된 반면, 두산은 포스트시즌 들어 최고의 투구를 보여주던 선발투수 금민철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1~4차전에서 모두 선취점을 얻은 팀이 승리했던 터라 먼저 1점을 냈던 두산으로서는 두고두고 하늘이 원망스러울만 했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날씨는 승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야구의 경우 평소와 다른 환경이 조성되면 민감한 장비나 선수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가 내려 공이 습기를 머금으면 반발력이 떨어져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유리하다고 보지만, 반대로 투수의 실투나 야수 실책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2회 두산 김현수가 터뜨린 솔로 홈런도 예가 될 수 있다.

김성근 SK 감독은 이날 경기가 취소된 뒤 "비가 내리면서 선발 카도쿠라 켄의 컨트롤이 흔들려 실투가 나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야구의 경우 비가 내리면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된다.

13일 비 때문에 기회를 날린 두산은 2001년 삼성과 붙었던 한국시리즈에서 비 덕을 본 적이 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격전을 벌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던 두산은 1차전에서 삼성에 4-7로 졌지만 비로 2차전이 연기되면서 피로를 덜고 분위기를 반전해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수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시즌 막바지에 SK가 19연승을 거두며 끝까지 선두 KIA를 추격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로 연기된 경기가 적어 여유있는 투수진 운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반대로 9월에 많은 경기를 치러야 했던 히어로즈는 투수진이 무너지면서 4위 다툼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야구와 달리 축구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지 않은 이상 악천후 속에서도 경기를 진행하는 편이다.

하지만 날씨가 선수들의 경기 운영을 방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그라운드가 물을 머금으면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선수가 공을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에게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 되고, 선수들의 기술이 좋은 팀이 경기에서 우세해진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은 빗속에서 펼쳐진 터키와 8강 경기에서 주무기였던 패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운 경기를 한 끝에 탈락한 바 있다.

1934년 제2회 월드컵 준결승에서 유럽 최강으로 꼽히던 오스트리아가 비에 젖은 그라운드에서 세밀한 플레이을 살리지 못하면서 힘을 앞세운 이탈리아에 졌던 것도 유명하다.

실내 경기이면서도 날씨에 영향을 받는 희귀한 사례도 있다.

지난 9월 26일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는 40년만에 마닐라를 휩쓴 폭우 때문에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저지대에 위치해 있던 주경기장이 침수되는 바람에 경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배구 경기 우천 취소'는 결국 한국팀에 이득이 됐다.

경기 일정이 급하게 바뀌면서 예선에서 같은 D조에 속했던 전 대회 우승팀 호주가 29일 저녁 8시 경기를 치른 뒤 바로 30일 정오에 한국과 맞붙으면서 제대로 된 컨디션을 찾지 못했고, 한국은 예상 외로 쉽게 호주를 꺾고 조 1위로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배구 대표팀을 맡았던 차상현 감독대행은 "이번 대회 일정이 꼬인 게 한국에게는 유리했던 것 같다"며 웃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