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을 자랑해 온 SK 와이번스 계투진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볼넷으로 자멸했다.

김성근 SK 감독은 16일 광주구장에서 시작한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KIA 왼손 타자를 겨냥해 왼팔로 맞불을 놓고 흐름을 끊는 전략을 펼쳤으나 믿었던 고효준과 이승호가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하면서 도리어 KIA에 기회를 주고 말았다.

SK는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부터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린 계투작전으로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했지만 지친 탓인지 이날 예리한 맛이 떨어졌다.

각각 12승씩 올린 에이스 김광현과 송은범이 왼쪽 손등과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빠져 선발진보다는 불펜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터라 중간 투수들의 피로가 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고효준은 2-1로 앞선 6회말 선발 카도쿠라 켄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이용규부터 최희섭까지 잇달아 등장한 좌타자 4명을 잘 묶으라는 특명을 받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첫 타자 이용규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위기를 맞았다.

1사 2루에서 대타 나지완을 유격수 땅볼로 잘 잡은 고효준은 그러나 2사 3루에서 최희섭과 김상현을 잇달아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에 봉착한 뒤 마운드를 윤길현에게 넘겼다.

윤길현이 이종범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바람에 순식간에 3-2로 뒤집혔다.

20여일 이상 쉰 탓에 KIA 타자들의 실전 감각이 떨어져 5회까지 단 1안타에 묶였다는 점을 비춰볼 때 고효준은 좀 더 공격적인 투구가 아쉬웠다.

이승호도 3-3으로 맞선 8회 1사 후 최희섭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고비를 맞았다.

볼 카운트 2-1의 유리한 상황에서 이승호는 볼 3개를 뿌려 허망하게 1루를 채웠다.

KIA는 김상현, 이종범, 김상훈의 3연속 안타로 2점을 뽑아 쐐기를 박았다.

단기전에서 상대 공격의 맥을 끊으려면 최대한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베테랑 이승호가 이를 모를 리 없지만 피로 탓에 집중력이 떨어져 실투가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최종 5차전까지 치른 플레이오프에서 고효준은 4경기에 나와 4⅔이닝을 던져 1점만 줬다.

이승호도 4경기에서 6⅓이닝을 던져 삼진 7개를 뽑아내는 역투를 펼치며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틀어막았다.

고효준이 1승, 이승호가 2승을 거둬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이날 둘이 좌타자 봉쇄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SK 계투책의 방향도 불투명해졌다.

(광주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