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에는 책도 읽고 사랑도 찾고,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콩스탕스가 등장한다. 콩스탕스에게 행운의 장소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콩스탕스는 정체불명의 '밑줄 긋는 남자'가 낙서를 남긴 책을 우연히 보게 되고,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으라는 '밑줄 긋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도서관을 줄기차게 들락날락거리다가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게 된다.

콩스탕스가 아니더라도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책읽기 제격인 고전적인 장소는 바로 도서관이다. 사람들의 손때가 탄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있는 서가를 훑다 보면 '밑줄 긋는 남자'의 지시가 없더라도 펼쳐보고 싶은 책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독서에 열중할 수 있는 공간은 도서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서광들의 은신처다. 읽다 미처 끝내지 못한 책은 관외대출해도 된다. 다만 낙서를 하는 등 책을 손상하는 행위는 하지 말 것.도서관의 책은 모두의 것이고,무엇보다도 당신은 '밑줄 긋는 남자'가 아니지 않는가.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은 서울에서 가장 예쁜 도서관을 꼽을 때마다 수위를 다투는 곳이다. 이 도서관은 경기고등학교가 1977년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옛 교사를 도서관으로 바꾼 것.흰색과 미색을 띤 차분한 분위기의 건물과 비교적 넓게 펼쳐진 정원이 미술관같은 느낌을 준다. 봄에는 벚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꼭 책을 읽으러 가지 않더라도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게다가 아담한 분수와 연못까지 있다. 정원에는 벤치도 많으니 열람실이 답답하다면 가을 햇살을 맞으며 걸터앉아 독서를 해도 좋다. 동행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겨가는 재미도 각별할 터다. 본관 1 · 2동과 교육사료관,휴게실동은 등록문화재일 정도로 제법 예스러운 맛도 난다.

정독도서관은 찾아가는 길도 예쁘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풍문여고를 끼고 돌면 짧은 골목길이 하나 나온다. 돌담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가 길을 건너면 바로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나오는데,그 전에 길을 유심히 보면서 가면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소박한 맛집 '라면 땡기는 날'이나 '먹쉬돈나'도 있다. 또다른 길은 안동교회와 한옥들을 보며 갈 수 있는 골목이다. 둘 다 거리는 비슷하니 취향에 따라 행로를 잡으면 된다.

정독도서관의 장점은 인사동,삼청동길이 가깝다는 것.10분 정도 걸어나가면 바로 인사동이고 삼청동도 지척이다. 굳이 정독도서관을 목적지로 삼지 않더라도 인사동이나 삼청동 나들이 코스 중 쉬어가는 곳으로 끼워넣으면 좋을 듯하다.

정독도서관만큼 입지가 괜찮은 도서관으로는 서울시 용산구 남산도서관이 있다. 1892년에 개관해 196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으니 제법 유서가 깊은 공공도서관이다. 남산도서관 옆에는 도심 속 산책로로 각광받는 남산공원이 있고 서울의 랜드마크인 N서울타워가 있다.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읽다가 남산공원을 거닐며 조금씩 다가오는 가을을 느낀 다음,내친김에 국립극장까지 찍는 긴 걷기 코스를 잡아도 괜찮다.

자료 찾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 좋다. 여의도 국회 안에 있는 국회도서관은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지 않으면 한참 걸어들어가야 하지만,방대한 자료가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인근 도서관에서 입수하기 어려운 자료를 찾으려면 바로 여기다.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또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정보의 보고.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볼일을 마친 후 시간이 남는다면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최근 개관한 국립디지털도서관에 들러보자.지하 5층,지상 3층 규모의 디지털도서관에서는 디지털 자료를 열람 · 검색할 수 있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미리 예약하면 영상물이나 UCC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복합상영관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