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m98㎝의 '거인'은 자신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마지막 서브에이스를 성공시킨 뒤 코트에 드러누웠다.

4시간6분의 혈투 끝에 '황제'를 무너뜨린 신예에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프로 4년차에 불과한 약관의 신예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6위.아르헨티나)가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테니스대회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1위.스위스)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포트로는 1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남자단식 결승에서 페더러에게 3-2((3-6 7-6<5> 4-6 7-6<4> 6-2)로 역전승을 거두고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페더러가 포트로를 꺾고 무난하게 US오픈 남자단식 6연패를 달성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비록 포트로가 준결승에서 페더러의 라이벌 라파엘 나달(3위.스페인)을 3-0(6-2 6-2 6-2)으로 완파하며 만만치 않은 기량을 과시하긴 했지만 페더러까지 꺾으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나달은 지난 6월 프랑스오픈 이후 무릎 부상으로 고생한데다 이번 대회 들어 복근에도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또 포트로는 메이저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유독 나달에게만 최근 3전 전승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고 페더러에게는 6전 전패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무엇보다도 페더러는 지난해 부진을 딛고 올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대회를 연달아 제패하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메이저대회 통산 16회 우승 등을 달성하며 진정한 '테니스 황제'의 면모를 되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 경기 초반 흐름 역시 예상과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페더러는 안정된 경기 운영으로 1세트를 6-3으로 가져가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비록 포트로의 끈질긴 추격에 2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포트로보다 훨씬 적은 실책을 범하는 등 여전히 경기 내용은 훨씬 안정적이었다.

페더러가 3세트마저 6-4로 가져간 데 이어 4세트에도 게임스코어 4-2까지 앞서나가자 경기장은 '황제의 전설'이 계속되리라는 기대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근성으로 뭉친 포트로는 강력한 포어핸드와 서브를 앞세워 기어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고, 지친 페더러를 몰아붙여 손쉽게 5세트를 따냈다.

라이벌 나달까지 탈락하면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였던 '페더러의 시대'는 투어대회 통산 6승에 불과한 신예의 투지에 얼마 가지 못하고 위기를 맞게 됐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세트 포트로의 활력 넘치는 움직임에 눌려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황제'라는 칭호를 다시 의심케 했다.

반면 포트로는 1967년 기예르모 빌라스(아르헨티나)이후 남미 선수로서는 32년만에 처음으로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페더러를 위협할 '새로운 황제' 후보로 떠올랐다.

포트로는 "믿을 수 없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승의 감격과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 등 코트 위의 모든 것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감격을 전했다.

그러면서 포트로는 페더러를 향해 "이번주 나는 두 가지를 꿈꿨다.

하나는 US오픈 우승이고, 하나는 당신(페더러)처럼 되는 것이었다.

이제 한 가지를 이루었지만 당신처럼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