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채 대신 골프백 멘 안재형씨 "병훈이 클럽 내던질 땐 제 가슴도 무너져요"
"골프가 탁구감독하기보다,그리고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어렵네요. "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영건 4인방' 못지 않게 주목받은 부자가 있다.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안병훈(18)과 이틀 동안 아들의 골프백을 멘 안재형씨(44)다. 안씨는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복식 동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대한항공 탁구감독을 지내다가 2006년부터 매니저겸 캐디로 아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일(9월17일)을 앞두고 한국의 내셔널타이틀대회에 초청받자 기꺼이 수락했다. 처음 출전한 프로대회에서 커트 탈락하고 말았지만,부자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탁구감독을 할 때는 선수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쳤는데,아들한테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아들이 나를 감독이나 코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로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래서 의견 충돌도 가끔 있어요. 탁구감독보다 '골프 대디(daddy)'가 더 힘들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골프는 얼핏 쉬워보일지 몰라도 그게 아니더라고요. 파4홀에서 두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려 2퍼트를 하면 파가 아니냐고 단순하게 말할수 있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어떤 때는 장타력이,어떤 때는 정확성이 요구되는가 하면 어느 곳에선 띄워야 하고 어느 곳에선 굴려쳐야 합니다. 기술적인 부분 못지 않게 심리적 요인도 크고요. 이 모든 요소가 잘 결합됐을 때 비로소 언더파가 나오며 120여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할 수 있으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

지난달 아들이 '큰 일'을 내자 주위에서는 "언제 프로가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장 프로로 전향시키지 않겠다"고 잘라말했다. 심사숙고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올해 초 조니워커클래식에서 유러피언투어 최연소 챔피언이 된 뒤 프로로 전향한 대니 리가 본보기입니다. 그 아버지와도 많은 얘기를 하며 조언을 구하고 있지요. 대니 리처럼 일찍 프로로 전향시켜 실전경험을 쌓게 하느냐,아니면 아마추어로 남아 학업과 골프를 병행한 뒤 프로로 데뷔시킬 것이냐를 놓고 좀더 고민할 겁니다. 최경주나 양용은의 예에서 보듯 골프는 '늦깎이'라도 얼마든지 세계적 선수로 대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지금 어깨에 굳은 살이 박혀있다고 했다. 골프백을 메고 뙤약볕 아래 4~5시간을 걷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게임이 잘 안풀려 아들이 클럽으로 땅을 내려칠 때에는 "내 가슴을 내려찍는 듯한 느낌"이라며 아들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잘 치는 것을 보면 힘든 것을 모른다"고 웃는다. 그래서 "언제까지 백을 멜거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인데,아마 프로전향 시점이 될성싶다. 그때는 본업인 탁구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