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MBC 스페셜-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방송

"이기는 것만 배우고 항상 잘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몰라서 많이 힘들었죠"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 우리는 박찬호(37ㆍ필라델피아)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용기를 얻었다.

당시 좌절하던 국민에게 힘을 줬던 그는 고국의 팬들과 사랑하는 가족이 이제는 자신에게 마운드에 오를 힘을 준다고 말한다.

MBC 스페셜은 11일 오후 10시55분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편을 통해 37살의 노장 박찬호가 털어놓는 야구 이야기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전한다.

"그때는 정신없이 시속 98마일, 99마일 던졌죠. 2000년도 마지막 게임 때는 완봉승도 하고 홈런도 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죠. 어릴 땐 1억이란 단어가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메이저리그에 오니) 억이란 단어가 너무 쉽더라고요.

한해 10승만 하니깐 몇십 억씩 내 몸값이 올라가더라고요"
1994년 LA 다저스 입단으로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는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6천500만 달러에 계약했으나 부상으로 인한 허리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마이너리그 중 최하위 리그인 루키 리그까지 강등됐다.

언론에서는 '최대의 먹튀' 혹은 '돈 먹는 맷돌'이라며 그를 비아냥거렸고 팬들은 은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가 먹고 튀지는 않았는데. 거기서 계속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잘할 땐 자랑스럽다고 하던 한국 사람들이 안 되니깐 제가 없어졌으면, 할 거란 생각에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는 머리도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허리가 아프다고) 공을 안 던지는 게 더 치욕적으로 느껴졌어요"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수많은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고 눈물을 삼켰던 그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갖는 명상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고국의 팬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펜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원 투수이지만,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과 아빠이고 싶어 매일 딸의 등굣길을 바래다주고 목욕도 직접 시켜준다.

박찬호 편을 취재한 윤미현 CP는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쥔 박찬호가 왜 아직도 공을 던질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뒤 찾은 해답은 그가 아직도 고국을 그리워하고 고국의 팬들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그는 고국의 팬들이 보내온 응원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걸로 힘을 얻고 있었다"고 전했다.

윤 CP는 "메이저리그 진출 15년 동안 박찬호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마음을 확 드러내지 않아서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고국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찬호는 우리가 어려웠을 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준 첫사랑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찬호와 탤런트 차인표의 숨겨진 인연과 그의 마이너와 루키 리그 시절의 미공개 영상도 공개된다.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