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연장전에서도 떨리지 않았어요. "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허미정(20 · 코오롱엘로드)은 당당했다. 올 시즌 미LPGA 투어에 뛰어든 '루키'였지만 연장전에서 2명의 베테랑 선수를 제치고 생애 첫 우승컵을 거머쥐는 뒷심을 보여줬다. 주니어상비군과 국가대표로 활약한 '준비된 챔프'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셈이다. 더불어 한국(계) 선수들은 미국 무대에서 올 시즌 7승째이자 통산 8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허미정은 31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노스플레인스의 펌킨리지GC(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7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13언더파 203타로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미셸 레드먼(미국)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로 승부를 갈랐다.

선두와 4타차 공동 9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허미정은 7번홀까지 파 행진을 이어가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8번홀부터 12번홀까지 5개홀에서 무려 6타를 줄이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10번홀(파5)에서 10여m를 남기고 친 세 번째 샷이 홀에 빨려들어가는 행운을 안았다. 이글이다. 결국 페테르센,레드먼과 연장전에서 맞닥뜨렸다.
국내 아마챔프서 美LPGA '신데렐라'로

연장 첫 번째 홀(18번홀)에서 레드먼이 먼저 탈락했다. 17번홀(파4)에서 치러진 두 번째 연장전에서 허미정은 티샷을 왼쪽 러프로 날려 위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두 번째 샷을 홀 2m 거리에 떨어뜨려 4m를 남겨 둔 페테르센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페테르센의 퍼트는 홀 바로 옆에서 멈춘 반면 허미정의 버디 퍼트는 천천히 홀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미LPGA 투어에서 무명에 가까운 허미정은 국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숨은 진주'였다. 박세리가 US여자오픈을 제패한 1998년 골프를 시작한 허미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1년 한국주니어 초등부 우승을 차지,주니어상비군으로 발탁됐다.

중학교 때 한국 중 · 고연맹 회장배 우승 등 각종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대전체고 1학년 때인 2005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를 지내며 아마추어 1인자의 자리를 유지했다. 고3 때인 2007년 미국에 진출,이듬해 프로로 전향한 뒤 퓨처스투어에서 상금 랭킹 4위에 올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LPGA 투어에 뛰어들었다.

176㎝의 키에 팔이 유난히 긴 허미정은 중학교 때부터 코오롱의 데이비드레드베터 골프아카데미(DLGA)에서 골프 실력을 키워왔다. 로빈 사임스 DLGA 코치는 "허미정은 신체적인 특성 덕에 헤드 스피드가 굉장히 빠르다"며 "그동안 상 · 하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 샷이 흔들렸는데 지난 여름부터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 세이프웨이 클래식 이전까지 참가한 13개 대회 중 '톱10' 진입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실력은 정상급이지만 승부욕이 적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올시즌 1승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끝까지 파고 들었고 마침내 첫 승을 신고하게 됐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