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스물 한 살로 같았지만,승부에선 양보가 없었다. 처음 친 샷이 트러블에 빠지면 다음에 '굿샷'으로 만회하고,승부를 결정지을수도 있는 1m 버디퍼트는 홀을 스치면서 오히려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승부는 연장 두번째 홀에서 결정됐고,이보미(21 · 하이마트)는 '메이저 챔피언'을 제치고 투어데뷔 후 감격의 첫승을 올렸다.

23일 제주 서귀포의 더 클래식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 넵스 마스터피스(총상금 5억원).'토종' 이보미(21 · 하이마트)는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박인비(21 · SK텔레콤)와 최종라운드를 공동 1위로 시작한 뒤 최혜정(25)과 함께 선두다툼을 벌였다. 17번홀까지는 이보미가 1타 앞선 단독 1위였으나 정규라운드 마지막홀인 18번홀(파4 · 길이 365야드)에서 박인비가 버디를 잡고 승부를 연장으로 넘겼다. 이보미가 티샷을 벙커에 빠뜨린 데 이어 벙커샷마저 실수하며 파에 그친 사이 박인비는 두 번째 샷을 홀 옆 60㎝에 붙이며 극적인 버디를 잡은 것.

합계 12언더파 204타가 된 두 선수는 18번홀 티잉그라운드로 돌아갔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이보미에게 또 위기가 왔다. 티샷이 정규라운드 마지막홀과 똑같은 위치의 벙커에 빠진 것.그러나 이보미는 이번에는 벙커샷 실수를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샷을 홀 옆 1.5m 지점에 떨구며 버디기회를 마련한 것.그러나 2008US여자오픈 챔피언 박인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보미의 굿샷을 확인한 그는 두 번째 샷을 이보미보다 더 가까운 1m 지점에 갖다놓았다. 이보미의 버디퍼트가 홀 오른쪽으로 흐르면서 승부의 추는 박인비에게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박인비의 버디퍼트도 홀을 돌아나오면서 두 선수는 이날만 세 번째 18번홀 티잉그라운드로 향했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두 선수는 어프로치샷 대결을 펼쳤다. 연장 첫홀에서 다잡았던 우승컵을 놓쳐버린 박인비의 두 번째 샷은 홀에 7m나 못 미친 반면 이보미는 홀 앞 4m 지점에 볼을 세웠다. 박인비는 연장 첫홀의 잔상이 남았는지 파퍼트가 홀을 2m나 지나쳐버렸고 컴백퍼트마저 실패하면서 '2퍼트 파'로 마무리한 이보미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메이저타이틀을 안은 뒤 국내에서 2승을 달성하려던 그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2007년 프로가 된 이보미는 그 이듬해 2부투어에서 2승을 올리며 상금왕을 차지했지만 정규투어에서는 우승이 없었던 선수.그러나 지난해 두 차례,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5월 이후 네 차례나 '톱10'에 들며 우승을 노크해왔다. 마침내 미LPGA 투어프로 8명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서며 '챔피언 서클'에 이름을 올렸다. 우승상금 1억원을 받은 그는 상금랭킹도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그의 후원사인 하이마트는 올시즌 벌어진 13개의 KLPGA투어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6승을 휩쓸었다. 상금랭킹 1위 유소연(21 · 하이마트)은 공동 14위를 차지했다.

한편 마지막날에도 조영란(22 · 하이마트)과 박시현(21)이 각각 7번홀과 5번홀에서 티샷을 홀에 집어넣어 이번 대회에서 모두 5개의 홀인원이 쏟아졌다. KLPGA투어 한 대회에서 5개의 홀인원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