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공인 대회 44연승,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 9회 연속 우승, 세계기록 26차례(실외 14회, 실내 12회) 작성.

여자 장대높이뛰기 '지존' 옐레나 이신바예바(27.러시아)가 지난 6년간 쌓아올린 경력은 그녀를 금세기 최고의 여자 육상선수라고 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IAAF 올해의 선수로 3차례 뽑혔고 라우레우스 재단이 주는 올해의 스포츠우먼에 두 번 선정됐다.

육상 스타 중 이신바예바 만큼 많은 입상 실적과 기록을 남긴 선수가 21세기에는 아직 없다.

게다가 장대높이뛰기는 육상 필드 부문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종목이다.

지상에서 인간이 가장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매력과 미녀 새들의 화려한 공중 동작을 지켜보는 짜릿함으로 육상 팬들은 늘 도약대 앞에서 열광한다.

이신바예바는 이 종목을 통해 여자 육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체조를 시작했지만 키가 너무 커지자 철봉 대신 장대를 잡은 이신바예바는 체조와 육상을 공중에서 결합시킨 완벽한 선수였다.

이신바예바는 그러나 18일 자신의 '장대 생애'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는 4m75를 넘지 못했고 5㎝를 높여 도전한 4m80에서도 연거푸 바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세계기록(5m05)에 25㎝나 모자라는 높이에 무참히 좌절했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이신바예바의 패배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올해 출발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신바예바는 지난 2월 도네츠크에서 열린 실내대회에서 5m를 넘어 26번째 세계기록을 썼고 그 이후에도 버밍엄, 베를린, 파리에서 3개 대회를 휩쓸었다.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패배를 안겼던 오랜 라이벌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러시아)와 미국의 새별 제니퍼 스투진스키가 부상으로 대회 출전을 포기하자 이신바예바의 '무혈 입성'을 점치기도 했다.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각각 5m01과 5m05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큰 대회에서 유난히 강한 스타성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해줄 걸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달 25일 런던 아비바 그랑프리대회에서 4m68밖에 넘지 못해 6년 만에 처음 패배를 당했을 때도 '잠시 컨디션이 나빴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신바예바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날 한 번도 바를 넘지 못해 아예 등위에도 들지 못한 채 무너지자 '부상 아니냐', '컨디션 난조였다', '심리적 압박이 컸다' 등 여러 분석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이신바예바는 경기 후 "오늘 일어난 일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이신바예바는 "모든 것이 완벽했고 자신도 있었다.

워밍업 때도 4m70을 가뿐히 넘었다"고 말했다.

다리가 아파 제대로 동작을 취할 수 없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신바예바의 '하향세'는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올해는 첫 실내대회 이후로는 실외대회에서 4m60과 4m80대를 오갔을 뿐 5m에 근접하는 높이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 dpa통신은 "이신바예바가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썼다.

그렇다고 이신바예바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날 금메달을 따낸 안나 로고프스카(폴란드)와 공동 2위 모니카 피렉(폴란드), 첼시 존슨(미국) 등이 유력한 경쟁자들이지만 여전히 5m 벽을 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신바예바와 경쟁한 존슨은 "그녀가 여자 장대높이뛰기 사상 최고의 선수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쁜 때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