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8㎞에 달한 강풍,볼이 떨어지면 찾기조차 힘든 러프,코스 곳곳에 산재한 항아리 벙커….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세 가지 장애물 앞에서 쩔쩔맸다.

여자골프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첫날 언더파를 친 선수는 고작 5명에 불과했고 전체(143명)의 40%에 가까운 56명이 80타대 스코어를 냈다. 자연의 위력 앞에 무기력하기는 톱랭커들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최대 희생자는 강수연(33 · 하이트 · 사진)이다. 강수연은 이날 버디없이 보기 5개와 더블보기 1개,그리고 명칭도 생소한 '옥튜플(octuple) 보기'(8오버파)를 기록하며 15오버파 87타(39 · 48)를 쳤다.

강수연이 고개를 떨군 곳은 18번홀(파4 · 길이 386야드).페어웨이를 가로질러서 7개,그린 주변에 8개의 벙커가 도사리고 있는 홀이다. 17번홀까지 7오버파로 중위권을 달리던 강수연은 그 홀에서만 8오버파,12타를 기록하고 말았다. 티샷이 깊은 벙커에 빠지면서 '참사'가 잉태됐다. 두 번째 샷을 옆으로 꺼낸 것까지는 무난했으나 세 번째 샷이 당겨져 러프로 갔고 네 번째 칩샷은 그린 주변 벙커에 빠졌다. 다섯 번째 벙커샷은 높은 벙커턱에 부딪친 뒤 자신의 몸을 맞고 말았다. 1벌타가 가산됐다. 일곱 번째 샷도 또다른 벙커에 들어갔고,여덟 번째 샷을 옆으로 꺼낸 뒤 아홉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렸으나 이번에는 3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9온3퍼트.옆에서 지켜보던 경기요원에 따르면 강수연이 네 번째 샷을 할 즈음에 이미 눈가에 물기가 고인 듯했다고 한다.

강수연은 낙담했든지,아니면 스코어를 계산하기 힘들었든지,스코어카드에 서명하지 않고 코스를 떠나고 말았다. 스스로 실격을 택한 것이다. 강지만도 지난 4월 KEB인비테이셔널 때 파4홀에서 12타를 친 적이 있는데,강수연처럼 볼이 OB나 워터해저드에 빠지지 않고 한 홀에서 12타를 기록하는 것은 좀체 보기드문 일이다.

강수연 외에도 첫날 '하이 스코어'를 적어낸 선수가 많다. 김인경은 '이지 홀'인 6번홀(파5 · 492야드)에서 6오버파 11타를 쳤고,솔하임컵(미국-유럽 여자프로골프대항전) 유럽랭킹 1위 글라디스 노세라(프랑스)는 파5홀에서 두 번이나 '8'자(트리플 보기)를 그리며 19오버파 91타로 최하위로 처지는 수모를 겪었다.

한편 선수들이 '하이 스코어'를 잇따라 쏟아내자 스코어를 지칭하는 용어도 관심거리다. 한 홀에서 파보다 4타를 더 칠 경우 '쿼드루플 보기'라고 하고,김인경처럼 한 홀에서 파보다 6타를 더 칠 경우엔 '섹스튜플 보기'라고 한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