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이 야외수영장에서 레이스하면 맥을 못 추고,미국LPGA 투어 무대를 호령하는 한국 낭자들도 알프스(에비앙마스터스)만 가면 고개를 떨어뜨리는 일이 재연됐다. 이처럼 스포츠세계에선 경기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징크스'가 가끔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과연 징크스는 선수들이 깨야하는 또 다른 벽일까.

2009 로마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이 예선 탈락한 이유로 최첨단 전신 수영복의 역할을 빗댄 '기술 도핑'과 더불어 '야외수영장 징크스'가 거론되고 있다.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야외수영장인 아쿠아틱센터에서 벌어진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했다. 2005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캐나다)와 올해 대회에서도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공교롭게도 야외수영장에서 치러진 대회들이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를 대비해 두 차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야외수영장에서 전지훈련을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야외수영장에서 지금까지 안 좋은 성적을 냈다"면서도 "징크스는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비앙마스터스도 마찬가지다. 2000년 미국LPGA 투어 대회에 포함된 이후 10년째 한국 여자 골퍼들에게 우승컵을 허용하지 않아 '에비앙 징크스'라는 용어가 생겼다. 특히 2007년과 지난해에는 한국 선수들이 연장전에서 패해 아쉬움이 더 컸다. 올해도 3라운드까지 선전했지만 우승컵은 일본 선수에게 돌아갔다.

스포츠 분야마다 징크스는 되풀이되고 있다. 프로축구(K-리그) 대전과 경남은 지난 26일 0-0으로 비겼다. 경남은 올시즌 16경기 중 무승부가 9경기나 돼 지독한 '무승부 징크스'를 이어갔다. 수원 삼성이 최근 4번 만나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상대가 있다. 리그 1위인 FC서울도,올시즌 돌풍의 전북 현대도 아닌 바로 제주 유나이티드다. 지난해 시즌 막판 제주를 상대로 1무1패를 기록한 데 이어 올 들어 2패를 당해 '제주 징크스'라는 말이 생겼다. 프로야구 LG트윈스는 상반기 팀타율 1위를 줄곧 유지했지만 에이스 봉중근만 마운드에 오르면 타선이 쪼그라드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봉중근은 시즌 방어율이 3.08이지만 성적은 8승9패로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부분의 종목에서는 또 루키가 첫 해에 맹활약한 뒤 다음 해에 고전하는 '2년차 징크스'가 존재한다.

물론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의 결과인 징크스는 깨지게 마련이다. 다만 시간의 문제다. LIG손해보험은 지난 24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09 부산 · IBK국제배구대회 A조 1차전에서 지난해 챔피언 현대캐피탈을 3-1로 제압했다. 지난 2년간 정규시즌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에 13연패를 기록 중이던 LIG손해보험이 '천적 징크스'를 끊은 것이다. 이준하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스포츠계에서 징크스는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한다"며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천적들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