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녀' 고(故) 고미영 대장의 시신이 19일 한국에 도착하면서 지난 11일 사고 당시의 순간이 뒤늦게 전해졌다.

고 대장은 당시 낭가파르밧(8천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6천200m에 있는 `칼날 능선'에서 실족, 1천100m 아래의 협곡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함께 등정에 나섰던 대원들이 사고의 충격으로 당시 상황을 상세히 밝힐 경황이 없어 한국에서는 고인이 난기류를 만나 추락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과 함께 정상에 오른 뒤 먼저 하산했던 김재수 원정대장이 이날 오후 국립의료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사고 당시 고인은 10일 오후 7시11분께 정상에 오른 뒤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강한 바람으로 하산이 지체됐고 설상가상으로 고소증을 호소한 고소 포터를 부축하느라 그 다음날 오전 9시가 돼서야 캠프4(해발 7천500m)에 도착했다.

캠프4에서 3시간 휴식을 취한 뒤 고인을 비롯한 정상정복대는 캠프3(6천700m)를 거쳐 캠프2(6천200m)까지 하산을 시작했다.

완만한 구간인데다 캠프3에서 캠프2까지는 전 구간에 로프가 묻혀있어 위험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에 앞서 하산을 시작한 김 대장은 캠프2 30m 위 지점에서 눈에 묻힌 로프를 눈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3-4m만 돌출되고 나머지 10m의 정도의 로프는 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 대장은 로프를 잡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고 대장은 완만한 경사를 걸어가다 갑작스럽게 추락했다.

이에 대해 김재수 대장은 고인의 신발 밑에 장착한 아이젠이 다른 발의 아이젠 끝이나 뒷발의 옷에 걸리면서 갑자기 중심을 잃고 추락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했다.

단순히 눈에서 미끄러졌다면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풍부해진 산소에 체력을 회복한 고인이 충분히 제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 발이 엉키면서 중심이 흐트러진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

이런 가운데 평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고인이 고소증에 걸린 고소 포터를 캠프4에 안전하게 옮긴 것이 사고의 간접적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고소 포터가 고소증으로 사지가 굳으면서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인을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고인을 둘러업다시피 해서 캠프4로 옮기는 과정에서 체력이 많이 소진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자신을 캠프4로 옮겨 준 고인을 비롯한 한국인들 때문에 화를 면한 그 고산 포터는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현지 병원을 찾아 고씨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