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21.두산)가 최고 타자죠. 전 현수보다 발만 빠를 뿐입니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얼굴값' 하는 LG 트윈스의 톱타자 박용택(30)은 라이벌이자 한참 후배인 김현수에 대한 칭찬부터 말을 풀어갔다.

둘은 벌써 몇 달째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격 1위를 놓고 경쟁 중이다.

18일 현재 박용택이 타율 0.372(274타수102안타)를 때려 선두를 질주 중이고 김현수는 0.357(294타수105안타)로 3위다.

박용택과 김현수는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때리는데다 좌익수를 맡아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공교롭게도 시즌 100번째 안타를 둘 다 홈런으로 장식하는 등 장타력도 겸비했다.

지난해 타격왕과 최다 안타왕을 차지한 김현수가 '검증된' 교타자라면 2002년 데뷔 후 2004년 딱 한 번 타율 0.300을 때렸던 '2할8푼 타자' 박용택의 변신은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다.

'몰래 약을 먹은 게 아니냐', '방망이에 철심을 박았느냐'는 농담이 돌 정도로 전혀 달라진 박용택에게 쏟아진 관심은 지대하다.

헌칠한 외모와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수준급 기량을 앞세워 데뷔할 때부터 LG의 장래로 촉망을 받았던 박용택이 지금은 얼굴보다는 실력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20대 방황을 끝내고 뜻을 세운 '이립'의 나이 서른에 잔치를 시작한 박용택을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들뜬 기색 없이 '이제 뭔가를 깨달았다'는 여유로 담담히 말을 이어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매우 잘 친다. 도대체 뭐가 바뀌었나.

▲누누이 얘기했다. 난 올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바꿨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지난해까지 난 직구를 때릴 타이밍으로 타석에 들어서 밋밋한 변화구 정도만 때릴 수 있는 타자였다. 직구와 시속 30㎞ 이상 차이가 나는 느린 변화구, 예리한 변화구는 도저히 내 타격 메커니즘으로는 때릴 수 없었다. 난 타석에서 누구보다 집중력도 좋고 승부욕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결국 기술적인 문제였나.

▲타석에 서면 할 일이 많아진다. 기술도 떨어지는데 투수와 수싸움을 하다 보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난 데뷔 후 단 한 시즌도 같은 폼으로 때린 적이 없었다. 지난해가 끝나고 양준혁(삼성), 김동주(두산) 같은 선배들은 어떻게 꾸준히 잘 때리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두 선배는 투수의 볼을 노려서 치는 타자들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 타격폼 등이 있었다. 그래서 시즌 후 전력분석팀에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간 가장 잘 때렸던 장면만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홈런과 안타를 때린 장면을 포함해 한 70~80타석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때 타석에서 느낌을 다 기억하나.

▲생생히 떠오른다. 홈런을 때릴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쨌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세 장면을 추렸다. 2004년(타율 0.300, 홈런 16개)과 2006년(타율 0.294, 홈런 16개)과 2005년 5월 20경기 연속 안타를 때렸을 때 모습이다. 2004년에는 바깥쪽 공을 때리려고 오픈 스탠스(오른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빼놓고 때리는 자세)를 처음으로 적용했고 2006년에는 지금처럼 스퀘어 스탠스(양발을 일자로 유지)이면서도 약간 넓게 섰다.

--비디오 복습이 끝난 뒤 몸으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

▲좋았던 감각을 되살렸고 12월 훈련부터 타석에서 적용했다. 김용달 타격코치께서도 '지금 자세가 좋다. 움직이지 말고 계속 밀로 가라'며 격려해주셨다. 타격 지도에 일가견이 있는 김용달 코치는 2006년 말 LG 유니폼을 입으면서 "박용택은 30홈런과 3할 타율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타자"라고 평가하고 파워히터로 키우고자 박용택의 타격폼을 여러 차례 고쳤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김 코치는 지난해 말 박용택 스스로 감을 찾도록 한발 물러났고 올해는 중요한 순간 간단한 지도로 기를 북돋고 있다.

--올 시즌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랐을텐데.

▲'내가 잘 할 수밖에 없는 한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위상을 확인하는 한 해라고나 할까. 한 단계 올라가든 완전히 추락하든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지금까지 결과는 괜찮다. 지난해 동기생 안치용의 성적이 좋아 주전 사수에 위협을 느꼈다. 프로에 와서 처음으로 주전 외야수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도 상했지만 덕분에 오기가 생겨 스프링캠프를 비장하게 임했다. 이진영, 정성훈 등 한 살 어린 동생들이 좋은 대접을 받고 자유계약선수(FA)로 팀에 온 것도 자극됐다. 진영이와는 서로 안타를 못 때리면 장난으로 놀리기를 하는데 이런 자극은 꼭 필요하다. 2006년 타격 7위, 최다안타 4위(140개)에 올랐던 박용택은 2007년 타율이 0.278에 그치더니 지난해에는 0.257로 급격한 내리막을 탔다. 박용택은 "지난해 막판 1~2개월 바짝 때렸다면 타율 0.280은 쳤겠지만 팀이 일찍 최하위에 처진 탓에 기운이 빠졌고 사실상 자포자기했다"고 돌아봤다. '종합적으로 좋지 않았던 시즌'이었다.

--타격왕 경쟁자 김현수를 평가한다면.

▲지난 겨울에 김현수를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뭐라 그럴까. 난 현수가 부럽다. 이렇게 하면 잘 때릴 수 있다는 느낌을 난 이제 알았는데 현수는 그 어린 나이에 터득한 거 아닌가. 현수 인터뷰를 봐도 '공을 노리지 않고 친다'고 하지 않나. 얼마나 야구가 재밌고 잘 될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있다. 다만 난 현수보다는 발은 빠른 것 같다(웃음).

--그렇다고 김현수에게 타격 1위를 내주진 않을 것 아닌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데(웃음). 홈런왕은 어렵겠지만 타격왕이든 뭐든지 다 해보고 싶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슬럼프는 없다. 주간 타율 0.250 이하로 때린 적도 없다. 스프링캠프에서 타율 5할 이상을 때렸는데 시범경기부터 감이 좋았다. 갈비뼈를 다친 바람에 늦게 합류했지만 4월 말 오자마자 타율 5할대를 때렸고. 고타율 행진이 끝난 뒤 내리막을 탈 뻔했지만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미친 듯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걸 보고 또 배웠다. 페타지니는 나이도 40에 가까워 순발력도 느리지만 왜 잘 때리는지를 열심히 분석했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이 있었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 고유의 스트라이크 존을 세우려면 다시 타격 폼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페이스가 내년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나.

▲섣부른 감이 있으나 이제는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투수와 수싸움보다는 자기 중심의 타격폼이 있느냐가 중요하고 난 그걸 찾았다.

--목표가 있다면.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와 같은 타자가 되고 싶다. 100% 완벽한 타자다. 2005년에 도루왕과 득점왕은 해봤으니 나머지 타격 타이틀도 한 번씩은 안아보고 싶다. 통산 2천안타, 200홈런-200도루도 달성하려면 오랫동안 꾸준히 뛰어야 한다. 통산 타율도 3할을 넘고(현재 0.286) 궁극적으로는 계속 'LG 밥'을 먹는 게 목표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