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산악인 고미영씨(41 · 코오롱스포츠)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 추락해 사망했다.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은 12일 "고씨가 이끄는 등반팀과 오늘 위성 전화로 통화했으며,등반팀은 고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현지 구조팀이 헬기를 동원해 13일 시신을 운구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등반팀은 대사관 측에 장례 절차 및 시신 운구 등 문제를 상의해 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고씨의 장례 및 시신 이송 등 문제는 고씨 가족들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이후 협의를 통해 진행될 예정"이라며 "태국을 거쳐 이슬라마바드로 들어오는 비행편이 월요일과 수요일,금요일에 있는 만큼 이르면 13일 중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에서 취재한 KBS의 영상 자료에 따르면 고씨는 발이 산 정상 쪽,머리는 아래 쪽으로 향한 채 미동없이 누워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상 자료를 판독한 동료 산악인들은 머리에서 피가 흘러있었다고 전했다.

고씨는 11일(이하 한국시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해발 8126m의 낭가파르밧을 등정하고 하산하다가 '칼날 능선'으로 불리는 해발 6200m 지점에서 조난당했다. 보통 하산할 때는 산악대원들끼리 서로 로프에 몸을 묶는데 고씨가 실족한 곳은 평소 눈사태와 낙석이 많아 로프를 사용할 수 없어 '칼날 능선'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다.

고씨가 등정에 성공한 낭가파르밧은 수직에 가까운 경사 때문에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및 로체(8516m) 남벽 등과 함께 가장 난도 높은 루트로 꼽힌다. 1953년 헤르만 불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할 때까지 7회에 걸쳐 31명의 희생자를 냈다.

코오롱스포츠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 10일 오후 8시30분께 정상에 오른 뒤 하산을 시작,캠프4에서 휴식을 취하고 캠프3를 지나 캠프2를 100m 남긴 11일 오후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오은선씨(43 · 블랙야크)와 함께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 주자로 손꼽힌다. 두 사람은 여성 산악인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 세계 첫 등정이라는 기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서로 앞뒤를 다투며 8000m급 봉우리 각각 11개와 12개에 올라 세간의 주목을 받아 왔다.

1991년 코오롱 등산학교를 통해 산악에 입문한 고씨는 자그마한 체구(160㎝,48㎏)로 고산 등반에 도전하기 전에는 국내 여성 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로 활약했다. 20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6047m) 등정을 계기로 2006년부터 고산 등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7년 국내 여성 산악인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3개를 연속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올 들어 히말라야 마칼루(5월1일),칸첸중가(5월18일),다울라기리(6월8일)를 이미 올랐고 이번에 낭가파르밧까지 오르면서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개 중 11개 등정에 성공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