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베테랑 수비수 이영표(32)가 낯선 중동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지난해 8월28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전격 이적했던 것 못지않게 놀랄만한 선택이다.

이영표는 애초 도르트문트와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구두 합의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결국 알 힐랄과 계약서에 사인했다.

독일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무대로 옮긴 것은 `안정적인 경기 출장' 기대 때문이다.

이영표는 지난 2008-09시즌 초반에는 도르트문트의 풀백으로 14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뛸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데데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8경기 연속 결장하는 등 설 자리를 잃었다.

도르트문트와 1년 재계약을 하더라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웠다.

이영표는 30세를 넘은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해 꾸준하게 출장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알 힐랄은 사우디아라비아 정규리그에서 11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문 클럽이지만 이영표가 수비수 주전 경쟁을 뚫기는 어렵지 않다.

같은 에이전트사인 ㈜지쎈 소속인 후배 설기현(30.풀럼FC)의 조언도 이영표의 중동행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설기현은 지난 1월부터 6개월간 임대 선수로 알 힐랄에서 몸담았고 실력을 인정받아 알 카타니 등과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풀럼 시절 벤치 신세였던 설기현은 자신감을 충전하고 프리미어리그로 돌아가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사르고 있다.

이영표는 설기현이 사우디아라비아에 1호 선수로 진출해 터를 닦아놨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이란과 2010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직후인 지난달 설기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이영표는 결국 알 힐랄로 진로를 결정했다.

알 힐랄과 계약 조건도 나쁘지 않다.

지쎈은 계약 기간이 1년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의 스포츠 전문채널인 스카이스포츠는 앞서 중동 언론을 인용해 이영표의 연봉이 100만유로(한화 17억8천만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2009-2010시즌 활약에 따라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할 수 있다는 옵션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영국에서는 선수 연봉의 40%가 넘는 세금을 떼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세금이 전혀 없다.

같은 수준의 연봉이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더 많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영표는 종교적인 문제가 다소 걸림돌이 되는 듯했다.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를 믿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매일 기도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에는 낮 시간 활동을 자제하고 금식을 하는 등 문화적 차이가 있다.

이영표는 지난 2006년 8월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AS로마로 이적할 뻔했지만 계약 성사 직전에 무산됐던 적이 있다.

메디컬테스트까지 끝나 사인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영표의 심경 변화로 끝내 로마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영표는 당시를 되돌아보며 "계속된 기도 속에서 로마에 안간다는 생각을 했을 때 평화가 찾아왔다"고 털어놨다.

세계적인 클럽이라는 부담 못지않게 종교적인 이유도 이적 거부에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영표는 이번에는 알 힐랄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영표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새로운 성공시대를 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