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여자배구단 핑크스파이더스 선수들은 지난 3월26일 프로배구 여자부 플레이오프 KT&G와 1차전 경기에 앞서 한자리에 모여 동영상 한 편을 봤다. 작년 리그 우승을 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분패해 체육관을 힘없이 나서던 자신들의 모습,경기 중 부상해 괴로워하던 모습 등 선수들이 잊고 싶었던 아픈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몇몇 선수는 흐느끼며 눈물을 글썽였고 대부분 선수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영상물 효과 덕분인지 정규리그 3위로 턱걸이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흥국생명은 지난 4월 2년 만에 다시 챔프를 탈환했다.

이 영상물은 흥국생명 여자배구단 안병삼 단장(50)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다"며 "어린 선수들은 무조건 야단만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요즘 배구계에는 안 단장의 '보험 영업식' 구단 운영이 화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안 단장은 26년 동안 보험 영업만 해온 '보험맨'이다. 그는 "보험 영업도 사기에 죽고 산다. 보험도 직원 스스로 어떻게든 동기가 부여될 때 실적이 늘게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안 단장이 여자 선수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수많은 여성 보험설계사(FC)들과 함께 일해왔던 경험 때문이다. 체육관에 갈 때마다 작은 인형이라도 선수들에게 안겨줬고 단장이나 선수나 똑같은 직장인이라며 살갑게 다가갔다. 그는 "꾸준히 '감성관리'를 했고 얼마 후 선수들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벽'이 허물어졌다"고 웃었다. 그의 보험 영업 경험은 선수단의 체력 보강에도 도움이 됐다. 흥국생명 직할사업단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전국 영업망을 통해 각지의 특산물을 공수해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새조개 등 싱싱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의 정성에 선수들은 환호했다.

사실 그가 단장에 취임한 이후 흥국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가 많았다. 시즌 중 감독은 두 번이나 교체됐고 황연주,전민정 등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잇따랐다. 팀이 4년 만에 3연패를 당하자 외부에 알리지 않고 고사를 지낼 정도로 구단은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는 "무엇보다 회사와 팬의 전폭적인 지지가 흥국생명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았다"고 강조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매 경기 체육관에는 회사 직원들과 팬의 열성적인 응원이 있었다. 감독 경질도 팀 성적과 무관하게 회사의 선수 보호 차원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감독 경질 당시 팀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감독 경질 이후 팀 성적은 떨어졌지만 부상 선수를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는 등 회사는 선수 보호 원칙을 지켰고 팀은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