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눈으로 치나요, 마음으로 쳐야죠"
14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포천 베어크리크GC 크리크코스 1번홀(파4).12년 전 시력을 잃은 이승진씨(41 · 무직)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자원봉사자 황병직씨(48 · 건설업)가 티를 꽂고 드라이버 헤드를 볼에 맞춰 정렬해준다. 연습스윙 없이 휘두른 샷은 뒤땅을 쳤지만 볼은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처음 필드에 나와서인지 어리둥절합니다. 모든 게 꿈같습니다. "

이씨가 7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샷은 벙커에 빠졌다. 그래도 볼이 잘 맞아 신이 났다. 자원봉사자로 나서기 위해 전날 코스답사까지 마친 황씨가 벙커에서 클럽 헤드를 모래에 대며 어드레스를 도와줬다. 힘껏 휘두른 볼은 벙커를 멋지게 탈출했다. 네 번째샷은 그린에서 90m 떨어진 지점에,다섯 번째샷은 홀에서 20m 거리의 그린에 떨어졌다. 황씨가 "나이스 온.천재 골퍼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첫 번째 퍼트를 홀 3m 지점에 붙였으나 두 번째 퍼트는 욕심 탓인지 홀을 2m가량 지나쳤다. 프로골퍼도 어려워한다는 거리에서 그가 퍼트한 볼은 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홀 스코어는 5온3퍼트로 '더블파'.

올해 3회째를 맞은 '베어크리크배 시각장애인 골프대회'에는 앞을 전혀 못 보는 1급 장애인 11명,약시인 2급 장애인 13명,지체장애인 3명 등 총 27명이 참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날 처음 필드를 밟아본 초급자들이다. 1급 장애인 유정일씨(41)에게 경기 전 베스트 스코어를 물었다. 그는 "오늘 처음 18홀을 돈다"며 "골프는 눈으로만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친다고 들었다. 스코어는 신경쓰지 않고 즐기면서 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일반 대회와 다른 경기 방식이 적용됐다. '코치'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티를 꽂고 방향을 잡아주며 이동할 때에도 도움을 준다. OB,토핑,뒤땅치기가 자주 나기 때문에 홀마다 기준 타수의 2배까지만 플레이를 해 온그린시키면 '1타'를 추가하고,못 올리면 '3타'를 더해 그 홀을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 원만한 경기 진행을 위해서다. 예컨대 파4에서 8타째에 '온그린'을 하면 스코어는 9로 기록하고,그렇지 못하면 11이 되는 것이다. 또 워터해저드나 벙커에서도 클럽을 지면에 대고 칠 수 있다.

이날 1급 장애인 부문에서 김홍철씨(46)가 47오버파 119타(54 · 65)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고,2급 장애인 부문에서는 최규일씨(42)가 28오버파 100타(49 · 51)로 우승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시각장애인 골퍼들에게 무료로 코스를 개방하는 신현구 베어크리크GC 대표는 "시각장애인 골퍼들이 리모델링한 크리크코스의 첫 손님"이라며 "이들이 골프를 통해 건강도 관리하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게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포천=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