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 시내의 한 인터넷 카페.2000개의 좌석이 빼곡히 들어선 이 곳은 직장인 학생 등 젊은 남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온''오디션' 등 한국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중국 온라인게임인 '몽환서유',미국 온라인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등에 푹빠져 있는 게이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리민씨(36)는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인터넷 카페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며 "한국 온라인게임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중국 시장조사업체인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2008년 207억8000만위안(약 4조8000억원)이었던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매년 35%씩 성장해 2012년에는 686억위안(약 15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래서 중국 시장을 놓치면 한국은 또다시 게임 변방국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높다.


◆한국 입지 나날이 좁아져

중국 게임 시장이 나날이 급성장하는 것과 반대로 중국 시장 내 한국 게임의 입지는 나날이 좁아져가고 있다. 중국에 온라인 게임 붐을 일으켰던 '미르의 전설'로 한때 70%에 달했던 한국산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0%대까지 떨어졌다. 얼마 전 출시된 '던전앤파이터''크로스파이어'의 성공과 지난달 상용화한 '아이온'의 선전 등으로 최근 회복세를 타고 있으나 여전히 '몽환서유''ZT Online' 등 중국산 게임에 1 · 2위를 내준 상태다.

네오위즈 차이나의 한상우 지사장은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한국 온라인게임밖에 없어서 싫든 좋든 한국 게임을 소비하던 중국 게이머들이 이제는 중국 게임과 한국 게임을 비교해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 지사장은 같은 중국인이 만든 게임이 훨씬 중국 게이머들의 기호에 맞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게다가 'WOW''피파온라인2' 등으로 미국 게임업체들이 중국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고,일본 게임업체도 중국 시장을 넘보고 있어 한국 업체의 입지는 날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서비스 마인드 부족도 문제

중국 퍼블리싱업체들은 한국 회사에 불만이 많다. 서비스 마인드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온라인게임에 빈번한 버그나 해킹의 문제가 터졌을 때 중국 업체는 2~3일 내에 해결하는데 한국 업체들은 한 달이 지나도 풀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기술력이 딸려서라기보다는 고객 지향적인 마인드 부족 탓이었다. 실제로 중국 업체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의 이 같은 태도가 중국 시장에서 한국이 밀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중국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게임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인데 한국 업체들이 그 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며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게임업체들은 사소한 키보드 조작에 있어서도 게이머들의 요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며 "중국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유연한 태도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한두 개 인기 장르만 고집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중국 내 한국 게임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게임 장르의 다양화를 주문한다.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 게임개발사로 넘어간 상황이어서 더 이상 '한국식' 온라인게임을 고집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NHN중국 현지법인인 롄종의 우궈량 대표는 "한국 게임이 중국시장에 들어올 때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 기존 장르만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한국 MMORPG가 중국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없었지만 지금은 넷드래곤,자이언트,완미시공,킹소프트 등 많은 중국 게임사들이 RPG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며 "중국 업체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캐주얼 등 다른 장르를 공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 유행한 '던전앤파이터''크로스파이어''카트라이더''오디션''프리스타일' 등의 게임 중 전통 MMORPG 장르는 단 하나도 없다. 최근 출시된 '아이온'이 유일하게 MMORPG 장르로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가 관건

게임 개발 단계부터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현지화 작업도 요구된다. 이는 '리니지'와 '크로스파이어'의 예에서도 드러난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초창기 한국 온라인게임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게임.그러나 중국인의 감성에 맞추지 못해 중국에서는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이와 대조되는 것이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크로스파이어'는 한국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중국 진출을 앞두고 중국 정서에 맞게 고쳐 동시접속자 100만명에 이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무협을 소재로 한 '미르의 전설'이 중국에서 빅히트를 친 것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문화코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국이 아직 따라오지 못할 수준의 완성도 높고 혁신적인 게임은 언제든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는 "아이온은 개발 단계부터 중국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 출시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국내는 물론 해외 게이머들의 기호를 아우를 수 있는 공통분모에 집중한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상하이=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