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19)가 현란한 점프와 빙판연기로 세계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스물이 채 안된 슈퍼스타가 사상 최초로 200점 벽을 깨고 우승했다.

생애 첫 세계 정상에다 총점 207.71점으로 기존 최고점수를 무려 8.19점이나 경신하는 대기록을 세워 휴일 아침 전 국민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박수갈채로 은반의 여왕 탄생을 축하했다.

TV 앞에 모여든 시청자들은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으며 외신도 '김연아 피겨역사 새로 썼다' '퀸(Queen) 연아 독무대' 등으로 그가 이룬 놀라운 성과를 잇따라 타전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김연아 개인의 벅찬 희열에 그치지 않는다.

박태환이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남자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 이상으로 피겨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대단한 성과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차례 실수가 있었지만 조애니 로셰트(캐나다), 안도 미키, 아사다 마오(이상 일본) 등 라이벌을 놀라운 점수차로 따돌린 것은 그만큼 실력이 탁월해 가능했다.

그도 "우승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경기했다"고 말했다.

세번째 도전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김연아는 금메달을 두 손에 꼭 쥔 채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들을 때 눈물이 나려해도 꾹 참았지만 오늘은 너무 기다렸던 자리여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관중석에서 건네준 태극기로 들고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환호에 답했다.

13년 전 '피겨신동' 별명이 붙은 김연아였지만 화려함 뒤엔 어김없이 아픔도 있었다.

2005-2006시즌 두 차례 주니어그랑프리시리즈,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2007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 등 한 시즌에 무려 4개 대회를 석권했으나 2006-2007시즌에는 허리부상과 스케이트 부츠 문제로 한때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아픈 허리를 이끌고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며 역전 우승해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런 치열함이 오늘의 영광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난 등으로 잔뜩 웅크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김연아에게 갈채를 보내는 이유는 또 '은반의 여왕' 혹은 '피겨 퀸'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최고가 되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도 그는 지난 해 환경재단이 뽑은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된 사실이 말해주듯 소외된 이웃, 사회적 약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선아이스쇼를 열었고 특A급 상업광고 모델로 자리를 잡으면서 얻은 수익금 중 일부를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등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박연차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 등으로 찌들어있는 우리 사회의 공기를 확 바꿔놓을 수 있는 청량제이고 또 하나의 희망 바이러스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피겨퀸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쾌거를 계기로 사회가 건강해지도록 모든 이들이 작은 노력을 더한다면 희망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