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미국프로야구가 주도해 만든 '몸값의 허상'을 무참히 깨뜨렸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겁없는 태극전사들은 2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WBC 준결승에서 1회부터 폭발적인 타격을 앞세워 '프로의 쿠바' 또는 '준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미의 강호 베네수엘라를 10-2로 크게 물리쳤다.

한국을 우승후보로 점찍은 미국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의 해설가 제이슨 필립스의 말처럼 대표팀은 준결승에 오른 나라 중 '가장 배고픈' 팀이다.

'배고픔'은 승리에 대한 갈증이자 현재 우리 선수들의 몸값을 의미한다.

'헝그리 정신'은 대표팀을 WBC 결승으로 이끈 원동력이자 세계에 '한국산 저비용 고효율 야구'의 우수성을 알리는 촉매제다.

한국은 3년 전 초대 WBC에서 4강 신화를 쓰고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정상을 밟았지만 강력한 라이벌 일본에 밀려 '아시아 2위'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우수 자원이 모두 미국에서 활약 중인 중남미 국가와 꾸준히 메이저리거를 배출 중인 일본에 비해 한국 출신으로 '씨알이 굵은' 메이저리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한 드림팀이 출범한 이후, 대표팀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눈부셨다.

저변은 얕으나 단판 승부에서는 강국과 충분히 어깨를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입증했음에도 세계의 확실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는 WBC에서 올림픽에서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는 태극전사들의 투지로 이어졌다.

그보다도 대표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미국, 일본, 베네수엘라 등 간판선수 1명의 몸값에도 못 미치는 형국에서 이들을 실력으로 제쳤다는 점은 세계 야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전망이다.

슈퍼 에이전트의 세 치 혀 끝에서 선수 연봉이 실력에 비해 엄청나게 부풀려지는 메이저리그식 관행 또한 한국의 '무명 전사'들의 선전으로 적지 않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창용(야쿠르트), 추신수(클리블랜드) 등 해외파 2명을 포함해 WBC 대표팀 28명의 연봉 총액은 76억7천만원으로 일본(1천315억원)의 1/17에 불과하다.

미국의 간판 타자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303억원)의 연봉에도 ¼ 밖에 안 되는 수준.
그러나 대표팀은 '몸값과 성적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새삼 증명하면서 한국 야구의 매서운 맛을 로스앤젤레스에 심었다.

대표팀은 홈런 3방으로 뉴욕 메츠에서 해마다 168억원을 버는 좌투수 올리버 페레스(멕시코)를 녹다운 시켰고 이날 대표팀 연봉 총액과 비슷한 금액을 지난해 받은 베네수엘라 선발 투수 카를로스 실바(시애틀)를 실컷 두들겼다.

대표팀은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을 상대로 이번 WBC에서 혼신의 역투와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 불굴의 투지를 한꺼번에 보여주면서 '몸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일부의 비판을 일거에 잠재웠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