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 1회초 5점을 내주고 물러난 베네수엘라 선발투수 카를로스 실바는 분을 못 삭이고 계속 씩씩댔다.

벤치로 들어오자 마자 글러브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벤치의 분위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1회초 결정적인 수비 실책을 했던 우익수 오도네즈와 2루수 차베스는 물론 다른 야수들도 움츠러드는 모습이었다. 한국팀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서로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 주지 않았을까.

‘팀워크’는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다. 큰 대회마다 예상외의 결과가 속출하는 주원인이다. 데이터만 놓고 보면 한국은 베네수엘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체 28명 가운데 22명이 메이저리거. 전직 메이저리거까지 합치면 선수 전원이 메이저리그에서 놀던 ‘큰 물고기’ 들이다.
반면 한국은 추신수 단 한명이 메이저리거인 ‘토종팀’. 예선전의 데이터도 베네수엘라에 유리했다. 팀 평균 타율은 베네수엘라가 0.309로 예선전 진출 8개팀가운데 단연 1위. 반면 한국은 0.251에 불과했다. 홈런 갯수도 12개로 한국(8개)에 앞섰고 평균 득점도 한국을 웃돌았다.

하지만 ‘플레이볼’이 선언되자 숨어 있던 ‘팀워크’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모든 선수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 반면 베네수엘라는 “이 사람들이 메이저리거 맞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엉성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베네수엘라는 어이없는 실책을 연발했다. 예선전 7게임을 통털어 5개 밖에 실책이 없던 베네수엘라는 이날 하루에만 5개의 에러를 저질렀다. 이번 대회 한 게임 최다 실책이었다. 선수 하나하나만을 놓고 보면 어디 내놔도 빠질데 없는 팀이지만 그들의 능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없었다.

동료 선수를 믿어야만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비’에서 베네수엘라는 큰 약점을 노출한 셈이다.

한경닷컴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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